민주시민교육 토론문 – 박홍순(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
“풀뿌리민주주의와 능동적 시민의 성장”
1. 위험사회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말한다. 그것도 자연적 재해로부터의 위험이 아니라 인위적 위험이라고 얘기한다. 곧 인재인 것이다. 왜 우리사회는 인위적 위험이 만연하고 있는가? 그 배경에는 우리사회 전반에 만연한 이기주의와 무한경쟁 시스템, 공공성에 대한 무지가 있다. 또한 낮은 투명성과 미약한 법치주의로 편법이 횡행하고 연고주의에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불신은 점점 더 심화되고 소통의 부재가 덧쌓여서 희망은 보이지 않고 비관주의와 대세추종주의가 그러한 위험을 재생산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
세월호 사고는 바로 이러한 우리 사회에 던지는 엄중한 경고였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자신을 되돌아 보고 성찰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백명의 꽃다운 어린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그 끔찍한 트라우마를 안고서도 우리는 회생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불과 반년도 지나지 못해 고질적인 편가름과 진영논리에 압도당하면서 서로를 불신하고 헐뜯고 책임을 돌리기에만 급급한 구태의 나락으로 다시 떨어지고 말았다.
2. 풀뿌리민주주의
이것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문화의 한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 곧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선거가 있는 단지 2주일만의 민주주의이다. 나머지 154주는 위임된 권력과 그로부터 소외된 무관심만이 있을 뿐이다. 대의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시민을 일개 민원인으로 전락시키거나 민주주의를 책임은 없이 권리만을 주장하는 반쪽짜리로 타락시킨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기고 떼쓰기가 통용된다. 대의제 민주주의만으로는 능동적 시민의 육성에 이르지 못한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직접 민주제가 결합되어야 한다. 특히 지역공동체에 기반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풀뿌리’민주주의는 ‘지방(local)’ 민주주의, ‘공동체(community)’ 민주주의, 또는 ‘마을(neighborhood)' 민주주의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공동체에서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소규모공동체일수록 구성원들 사이의 직접적인 대화와 모임이 수월하다. 풀뿌리민주주의는 사람들 사이의 면대면(face-to-face) 관계를 발전시키고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사적 이해에 얽매이는 개인의 행동을 제어하고, 사람들의 행동이 사익보다는 공동체의 이해에 적합한 해결책을 찾도록 자연스럽게 이끈다. 풀뿌리지역사회에서의 협업 활동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싹트고 서로를 책임지는 문화를 배우고 익힌다. 풀무학교(충남 홍성군 홍동면)와 같은 오래된 풀뿌리 지역운동의 경험들을 살펴보면, 얽히고설킨 뿌리들 간의 관계의 힘이 지속성과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풀뿌리민주주의는 시민의 직접 참여를 통해 아래로부터 권력을 형성하는 직접민주제적 요소와 함께 풀뿌리 차원의 공론장을 통한 소통과 상호적 수평토론에 의한 의사결정과정을 거치는 ‘숙의민주주의’적 요소를 결합할 때 실질적 내용을 획득할 수 있다. 풀뿌리민주주의의 주인은 지역사회의 주민이다. 풀뿌리민주주의는 참여제도의 도입이라는 ‘결과’만을 보지 말고 지역주민들의 자치역량을 강화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접근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행위주체로서 능동적 자기결정권과 자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시민이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풀뿌리민주주의 활성화는 지역사회 공공의 재구성으로 이어진다. 전통적으로 정부가 맡아왔던 공공의 영역을 지역 시민사회로 권한위임하고 책임을 공유하는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확장되고 있다. 로컬거버넌스 시스템의 도입이 그것이다. 내용적으로 더 나아간다면 새로운 커뮤니티 거버넌스의 실현이다. 지역사회 공공의 재구성에서 필수적인 것은 지역 시민사회의 성장과 역량의 강화이다. 곧 능동적 시민의 육성이다. 여기서 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것은 평생학습도시의 활성화로도 연결된다.
지역사회에서의 평생 학습 시스템은 민주시민 양성에 적절히 기여할 수 있다. 평생교육진영의 앞선 부분에서 근자에 많이 얘기되고 있는 자기주도학습, 체험학습, 참여학습 등의 강조가 연결지점이다. 이것은 풀뿌리 시민운동의 경험에서 나온 최근의 지역사회 시민교육의 내용과 닮아 있다. 강의보다는 체험학습, 학습동아리의 결성과 실천으로의 연결, 참여자 중심의 교수방법 등이 그것이다. 지역을 알고 마을에서 배우자는 움직임, 참여자 모두가 선생이라는 슬로건, 점점 늘어나는 마을학교와 마을강사, 지역의 인재를 찾고 자원을 발굴하자, 삶 속에 전문가가 있다는 교훈, 이 모든 것들이 현실에서 전개되고 있는 소중한 노력들이다.
시민교육은 시민들의 생활세계 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의 삶과 앎이 유기적으로 묶여 돌아갈 때만이 비로소 현실성을 갖게 된다. 시민교육은 생애의 전 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평생학습의 과정이며 사회의 변화발전과 함께 그 내용과 방법을 끊임없이 개선해 간다. 마을만들기와 같은 삶터에서의 참여와 실천이 시민들의 성장을 돕는 기초가 된다. 마을만들기의 핵심은 주민들을 변화의 주체로 만드는 과정이고 그것은 곧 학습의 과정이기도 하다. 여기서의 학습은 주인의식, 연대의식의 계발을 의미하는 것인데, 마을만들기는 초기의 의사결정에서부터 구체적인 실행 및 평가의 전 과정, 즉 마을의 문제 혹은 의제(agenda)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주민들의 토론과 이해관계의 조정, 전문가의 조언, 행정과의 협력, 합리적 결론의 도출, 실행과정에서의 역할분담과 책임, 사후관리와 평가 등에서 생생한 집단학습의 경험을 하게 된다.
3. 제도화의 맹점
민주시민교육의 제도화는 곧 국가의 지원을 의미한다. 지난 20여년의 민주시민교육 제도화 요구의 핵심 내용은 민주시민교육 법안의 제정과 민주시민교육원의 설립이다. 민주시민교육협의회 안이나 민주시민교육포럼의 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안, 최근에 민주시민교육거버넌스의 안까지 기본적인 내용은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국가가 어떤 지원을 할 것인가? 이다. 하지만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제도화에 어떤 맹점은 없는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은 능동적 시민의 육성을 목표로 한다. 능동적 시민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체제의 통합성과 일체성을 높이는 가치적 측면과 다양성의 수용이라는 개인적 측면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도가 높아지면서 자율성의 존중, 다양성의 수용에 대한 이해는 확장되어 왔지만 가치적 측면을 실현케 하는 행위자로서의 공공의 역할, 특히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는 점점 회의적인 생각이 증대되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연방정치교육원을 설립하고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부여했던 전후 독일의 상황과는 지금 우리의 조건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후기산업사회를 경과하고 있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우리사회는 이미 국민국가 강화기의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던 관성을 넘어서서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를 추구하고, 지역 공동체의 역할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국가는 지원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세우는 것도 좋다. 그렇다면 대신 나서게 되는 자는 누가될까? 사회적 신뢰와 권위가 부족한 상태에서 시민단체나 전문가는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설 수 있을까?
민주시민교육거버넌스의 안에서 제시하는 다섯가지의 기본원칙, 즉 시민주도성, 다양성존중, 참여자중심,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과 자율성은 그동안 논의되어 온 내용을 비교적 잘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교육내용은 제출된 두 안 모두가 대동소이한데 민주주의 기본 가치와 정치제도, 시민의 권리와 의무, 민주적 토론 방식과 합리적 의사 결정이 주 내용이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 덧붙여 자기 성찰과 공감 능력의 향상, 다양성 존중의 훈련,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와 공동체 활동 등과 같은 한 단계 심화된 교육내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또 추진 방식과 수행 주체의 측면에서 고민해 보아야 할 지점도 있다. 시민 교육을 위한 자원 배분 권한의 이동을 시도한다면 정부가 아닌 또 다른 대리자(기관)를 설치해서 하는 방법이 취지를 잘 살릴 수 있을까? 중간 지원 기관을 설립한다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이해관계로 부터의 독립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가? 법이 제정되어 조성되는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정보와 자원은 명실상부한 공공의 것으로 되도록 해야 한다. 들고 남이 자유롭고 교류와 소통이 일어나며 필요한 것을 마음껏 갖다 쓸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 기능을 할 수 있는 그런 기반이 형성될 수 있기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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