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순 / 금천구 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
풀뿌리공동체운동단체인
열린사회시민연합을 통해 주민자치, 자원봉사, 시민교육운동을 전개해왔으며 현재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 운영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풀뿌리운동과
시민교육
풀뿌리운동의 특성
풀뿌리운동은 보통 평범한 민초(民草)들이 생활상의 운동을 통해 지역공동체를 변화시켜가는 과정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풀뿌리운동이 주목받게 된 것은 과거 시민운동이 갖는 일정한 한계에 대한 반성과 극복의 움직임이 작용한 결과이다. 이제까지의 시민운동이 법과 제도 등 사회구조의 개혁을 주요 내용으로 세상을 진단하고
논평하는 방식의 하향식 방법으로 활동하였고 활동의 주체도 시민단체(NGO))가
부각되었었다면, 풀뿌리운동은 사람과 생활(의․식․주)을 활동의 내용으로 하면서 시민이 원하는 일을 자신이 좋아서 하는 상향식 방법으로 시민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전개하는 운동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풀뿌리운동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운동의 영역들은 주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교육과 복지, 생활환경개선과 같은 분야들이다. 이런 분야들에서 전개되고 있는 풀뿌리운동의
구체적 양상들을 살펴보면 풀뿌리운동이 이전의 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과 왜 다르다고 하는지, 새로운 대안운동으로서의 특성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환경분야에서 풀뿌리운동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활동은 ‘도심하천살리기’,
'음식물쓰레기줄이기', '도시텃밭만들기'와 같은 활동들이다. 환경분야에서의
풀뿌리운동의 접근방식은 감시와 고발, 정책전환 촉구를 주 사업방식으로 하는 이전의 전문적인 환경운동단체들의 운동방식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그 특징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람들의 의식변화, 생활양식의 변화를 추구하는 교육사업을 앞세운다는 점이다.
둘째 주민들의 직접 실천의 주체로 만들고 조직화함으로써 생활실천운동으로 정착시킨다는 점이다. 셋째 환경문제뿐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불러일으키고 지역공동체의 활성화에 기여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하천환경의 복원을 예로 들자면 우선 주민들 스스로가 동네 주변의 개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기 삶의 일부로서 친숙하게 대하며 생태복원의 주체로서 참여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친환경적 녹색도시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각종 오염원의
규제와 당국의 효과적인 환경정책이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을 충족하려면 지역주민들이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활동에 직접 나서도록 하고 생활양식 자체를
친환경적인 것으로 전환하도록 해야 한다.
시민들의 일상생활에서 항상적으로 맞부딪히게 되는 음식물쓰레기 처리 같은 문제도
풀뿌리운동에서는 외면하지 말아야 될 중요한 운동의 소재이다. 매립이나 소각방식에
의한 처리가 또 다른 환경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있고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 건설문제와 관련한 지역간 이기주의(NIMBY현상)도 많이
여론화된 문제이다. 풀뿌리운동단체들이 많이 시도한 방식은 EM이라고 하는
혐기성 미생물발효제를 사용한 남은 음식물의 퇴비화, 사료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시민들의 직접적 참여와 환경의식의 제고, 지속적 실천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의 정비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행정, 기업 등 관련 분야와의 협력을 통해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에는 자원의 재활용과 순환시스템, 안전한 먹거리의 확보와 공정한 유통체계의
확보 등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이와 관련된 풀뿌리운동들이 활성화되고 있다. 더 나아가 도시에서 친환경적인 농업, 대안에너지과 같은 대안적인
생활양식에 대한 접근과 실험들이 실생활과 접목되고 있다. 벼룩시장과 재활용가게, 소비자생협운동, 도농직거래, 공정무역, 주말농장, 도시텃밭, 햇볕발전소 등등 많은 프로그램들이 시도되고 행정의 정책과도 관련성을 높여가고 있다,
풀뿌리운동에서 주민참여는 방법이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주민참여 그 자체로서
중시된다. 주민들 스스로가 자신과 이웃, 지역의 문제를 찾아내고 그 해결의 과정에 참여케 하며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의식변화와 관계변화를 추구하도록
한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꾸준한 운동과정을 통해 주민들을 지역사회의
진정한 주인으로 조직하려고 한다. 풀뿌리운동은 정치, 경제적인 현안문제들 보다는 오히려 교육, 복지, 환경, 보건 등 생활상의 문제를 매개로 지역사회공동체의
새로운 사회문화형성을 위해 노력하며, 그러한 사회변화를 이끄는 궁극적 힘을 주체인 지역주민들의 변화, 성장에서 찾으려 한다. 따라서 이러한 운동은
이 사회를 보다 밑에서부터 바꾸어 나가는 근원적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이다.
공동체성과
시민사회의 역할
근원적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으로서 풀뿌리운동을 생각해볼 때 그 키워드는 공동체성이다.
근대의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지역공동체는 해체의 길을 겪었다. 근대화는 권력의 중앙집중화를 가져왔고, 도시와 농촌간 또 중앙과 지방간 불균형 발전을
초래하였으며, 공동체의 해체를 심화시켰다. 우리사회도 근대화에 따른 개인주의화와 지역공동체의 붕괴로 말미암아 과거 전통사회에서 활성화되었던 두레,
계, 향약과 같은 공동체 규범들이 사라지고 해체되었다.
그런데 산업화와 도시화, 개인주의화가 상당정도 진전된 90년대 이후 시민운동뿐
아니라 일반 사회언론이나 정부정책에서도 “더불어 사는 삶" 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이 상징해주고 있듯이 환경, 복지,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공동체적 지향에 대한 요구와 운동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공동체 지향적인 움직임의 확산은 현대사회의 병폐에 대한 자각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공동체 상실이라는 근대화의 비관적 현실은 역설적으로 현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공동체적 삶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앙중심의 근대 산업화는 많은 문제를 초래하였다. 지역경제의 추락과 주택의
노후화, 전통적 상가의 몰락, 문화시설의 부족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또 그것은 만성적 대량청년실업, 가족붕괴와 범죄, 쓰레기 등 생활환경의
악화, 교육환경의 열악화, 사회적 신뢰상실 등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위기를 낳는 원인이기도 하다.
현대사회가 처한 많은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받지 않고도
공공선의 실현이 가능할 수 있는 시민문화의 형성, 곧 공동체성의 체득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구체적 삶의 현장, 시민들의 생활세계영역인 지역공동체에서부터
비롯된다. 개개 시민들이 커뮤니티활동의 경험 속에서 참여를 통한 학습이 이루어지며 그것은 곧 사회적 책무에 응답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활동(Volunteering)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는 사람들의 지식문화수준, 기술발전과 생산력의 증대, 민주주의의 발전
등 사회의 전반적인 자율화 과정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공동체에 대한 강조가 개인 자율성의 억압으로 귀결되지 않고 오히려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더욱 증진시킬 수 있는 기초로 작동되는 시대적 조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조건을 현실 진보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영역이 시민사회이다. 시민사회는 국가와 같이 강제력에 의존해서
공익을 추구하지 않고 시민의 자발적 자원활동을 동력으로 삼는다. 또 시장과 같이 사적 이익의 추구를 절대화하지 않고 사회적 신뢰와 규범,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적 자본을 축적함으로서 공공의 토대를 튼튼히 한다. 때문에 시민사회의 성숙도가 높아질수록 개인과 공동체 간의 긴장을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자발성에 근거한 공익성의 추구’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증가하게 된다.
이제는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개인의 자율성과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의
조성에 힘써야 할 때이다. 오늘 날 시민사회는 국가나 시장이 갖지 못한 새로운 인적, 물적, 정신적 자원을 갖춰나가고 있다. 바로 자발적 부문이라는
특성에서 나오는 힘이다.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자발성에 근거한 공익성의 추구, 이것이 문제를 해결해나갈 열쇠이다.
마을만들기는
공동체학습의 과정
지역사회에서의 주민참여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참여의 시작은 자신의 삶터에서부터이다.
생활주변의 여러문제들은 함께 사는 이웃들과 연관성을 갖고 발생한다. 그리고 그들과의 이해와 갈등 조정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조건과 질서를 만들어
내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생활하는 데 고통과 불편을 주는 생활환경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개선하며, 공용시설이나 장소 등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마을 만들기'는 새로운 주민 참여의 좋은 출발점이다. 공유공간에서 벌어지는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개선하며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단절된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의사소통의 경로와 시스템을 형성해가는 것, 그것은 공동체를 이뤄가는 과정이다.
또 이러한 과정은 새로운 사람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기문제에만 집착하던 개인들이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웃과 더불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학습하고 체험함으로써 진정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민주시민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마을만들기'에서 ‘마을’이 활동의 객관적 환경이자 지향해야 할 공동체성을
의미한다면 그것을 만들고 현실화시킬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수많은 주민자치활성화사례나
마을만들기 성공사례들을 살펴보면 그 속에서 일관되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사람이 있어 좋은 마을을 만든다’는 것이다. 마을리더가 중요하고
마을구성원들의 생각과 준비정도가 마을만들기의 성패를 좌우한다. 좋은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반드시 거기에 마을리더이든 공무원이든 활동가든 누군가 헌신적이고
유능한 ‘사람’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희망이긴 하지만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마을만들기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학습이 방법이고 관계가 관건’이라는 암묵지가 통한다. 누구나 살고 싶은 지역사회,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참여의식, 책임의식, 연대의식이 성장할 때 가능하다. 그런데 이는 제도교육만을 통해 습득되지 않는다. 일반 생활인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시민교육은 일방적으로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보다는 생활세계의 영역에서 공동으로 부딪히는 문제들을 자신들의 참여와 실천으로 해결해
가는 과정을 조직함으로써 ‘삶’과 ‘앎’이 통합되는 교육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마을만들기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자신들의 가치가 실현되는 마을을
만드는 운동이다. 마을만들기의 영역은 주민들에게 의미있는 새로운 공간이나 장소를 만드는 일, 일상 생활환경 중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일, 마을의 역사와 문화, 전통 등을 탐구하여 마을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일, 마을의 자원을 조사하고 개발하여 공동작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 등 다양한 영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마을만들기의 핵심은 주민들을 변화의 주체로 만드는 과정이고 그것은 곧 학습의
과정이기도 하다. 여기서의 학습은 주인의식, 연대의식의 계발을 의미하는 것인데, 마을만들기는 초기의 의사결정에서부터 구체적인 실행 및 평가의 전
과정, 즉 마을의 문제 혹은 의제(agenda)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주민들의 토론과 이해관계의 조정, 전문가의 조언, 행정과의 협력, 합리적
결론의 도출, 실행과정에서의 역할분담과 책임, 사후관리와 평가 등에서 생생한 집단학습의 경험을 하게 된다.
지역공동체는
시민교육의 기반
마을만들기와 같은 삶터에서의 참여와 실천이 시민들의 성장을 돕는 기초가 된다면,
전체 시민교육의 측면에서 풀뿌리운동은 민주시민의 성장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을까? 시민교육은 시민들의 생활세계 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의 삶과 앎이
유기적으로 묶여 돌아갈 때만이 비로소 현실성을 갖게 된다. 시민교육은 생애의 전 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평생학습의 과정이며 사회의 변화발전과 함께
그 내용과 방법을 끊임없이 개선해 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시민교육은 사회를 이루고 있는 시민들이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공적 책임을 자각하고,
인간의 삶의 전반적인 현실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여 제반 문제들에 대한 자주적 판단력을 가지며,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협조성을 발전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시민단체들에 의해 수행된 민주시민교육에서 최근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경향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즉 풀뿌리지역사회에서의 시민교육, 체험학습, 학습동아리의 결성과 실천으로의 연결, 참여자 중심의 교수방법 등이 그것이다. 민중교육으로부터
시작하여 민주시민교육을 거쳐 새로운 모색을 거듭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의 시민교육운동이 자연스럽게 여기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론적 측면에서도
교육연구자들이 최근 많이 주장하고 있는 자기주도학습, 체험학습, 참여학습 등을 기본요소로 하는 공동체참여학습론과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지역공동체(community)는 새로운 시민교육의 기반이다. 지역사회는 국민국가체제의
약화경향과 시민사회의 다양성 증대, 지구촌화의 흐름 속에서 시민들의 일상적 삶의 현장에 근거한 배움터로 새롭게 인식되어 지고 있는 영역이다. 또
새로운 시민교육은 사회적 제도와 구조 속에서 규정되어진 개인으로의 접근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과 그들 상호간의 관계와 그를 통해 만들어지고 운영되어지는
사회에 대한 이해와 훈련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러한 교육은 개개인의 사적 관계를 공공영역의 공적 관계로 승화시키면서 그 안에서 이기적 공동체가
공동선을 지향하는 공동체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며 성숙한 시민사회를 이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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