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1일 월요일

한국사회세대연찬발제(2019.10)

한국사회 세대 연찬 발제

                                                                                                          박홍순 · 
한 ×86세대의 소회 



  노장청(老壯青)세대 간 조화를 추구하고 서로 도와 미래를 준비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이 글은 “근대의 가치와 한국의 이념 지도”란 주제로 한국사회를 연찬하는 50대들의 대화모임에 참여하면서 생각해봤던 것들을 거칠게 정리한 글입니다. 

  한국사회는 이른바 ‘압축적 근대화’과정에서 배태된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인해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른바 ‘조국사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농염이 짙어지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그 실태를 확실히 보여주며 우리 모두를 각성하게 할 수 있는 소재로도 될 수 있습니다. 기왕이면 비관적인 측면보다는 낙관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이른바 ×86세대로 불리우는 우리 세대는 ‘민주화의 추억(?)’을 공통의 기억으로 갖고 있습니다. 우리 윗 세대가 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 그리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를 공유하고 있다면 우리 세대는 “잘 살아보세”의 피땀을 자양분으로 해서 머리 속에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가슴 속에는 “학우여, 들리는가? 민중의 목소리”를 새기며 청춘을 불살렀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민주화의 추억에는 명암이 같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유와 제도적 민주주의가 그 밝은 면이라고 한다면 어두운 면은 이른바 좌경화혁명운동에의 투신과 그 후과입니다. 그 열정과 결단이 치열했던 만큼 그것이 개인과 사회에 남긴 상처와 여진은 깊고도 넓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혼란도 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보다 솔직하게 과거를 마주하고 용기있게 얘기할 수 있었다면 그 갈등과 혼란은 훨씬 줄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 청년세대의 요구와 ‘공정’의 보편화 

  청년이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임도 분명하지만 노년이 단순히 흘러 간 과거 세대가 아니듯이 청년 또한 현재 우리사회의 다양성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진보운동을 하고 있는 한 청년의 인터뷰 내용을 들여다봤더니 오늘날 우리사회의 현실을 영화 ‘헝거게임’에 비유하면서 “이 잔인한 게임을 멈추지 않는 한, 다음 차례는 나 자신이 될 것이다.”라는 자각으로 운동을 한다고 하더군요. 높은 자살율과 낮은 출생율이 보여주고 있듯이 청년들이 우리사회를 “헬조선”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부디 다들 알아서 행복하자...” 이 얼마나 슬픈 우리시대의 자화상입니까?
  오늘날 청년 세대들은 위계가 명확한 공동체 문화나 다양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못견뎌합니다.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취약한 개인이 연결되고 보호받을 수 있는 방식을 원합니다. 그들은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구원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어떤 개인도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는 것, 누구든 주체가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고 자신들이야말로 오히려 협력하고 협업하는 데 열려있는 세대라고 자부합니다.
  오늘 날 청년 세대가 보편적으로 공감하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개인의 자유 확대’와 ‘공정의 실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앞선 세대가 이룩한 근대화(물질적 풍요와 정치적 자유)의 토양 위에서 꽃피는 요구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가 필요한 지점입니다. 청년 세대가 노년 세대나 장년 세대의 연장선 상에 있으면서 앞의 두 세대와 확실히 다른 점은 개인과 국가사회공동체와의 관계에서 명시적으로 개인을 우선시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화 과정 이후의 우리 사회의 과제로 정신적 측면(의식문화적 측면)에서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이기주의와 물신숭배의 극복, 제도적, 경제적 측면에서의 양극화, 이중화의 극복이라고 한다면, 청년 세대의 위와 같은 요구가 점차 보편적인 사회적 요구로 되어 가고 있는 것은, 특히 사회적 정의의 실현 - ‘공정’의 과제가 날로 심각해져 가는 양극화, 이중화의 문제와 맞물려 사회적공감대를 확대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생각할 때 저는 “정의와 용기는 젊음의 생명”이라는 젊은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가사가 생각납니다. 이 때의 정의는 올바름, 곧음, 의로움 이라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무릎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 원한다”라는 노래도 즐겨 불렀죠. 이 때의 ‘정의’는 ‘선비정신’으로 표현되는 동양적 철학전통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청년 세대가 얘기하는 ‘정의’는 영어로 치면 fairness나 equity에 가깝습니다. 공정과 공평, 서양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의 전통에 이어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도 지난 3~40여년 동안 한국 사회는 확실히 시장경제에 기반한 대표적 근대국가-서구에서 출발해서 지구적으로 확대된-의 보편성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 유래한 근대적 자유시민은 시장과 상업활동의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독립된 위상의 확보, 사유재산의 보장, 법 앞의 만인의 평등 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좀 단순화의 위험성을 무릎쓰고 말한다면 ‘정신’보다는 ‘돈’이, 선비나 수도자의 권위보다는 상인의 지혜가 더 중요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의 자유시장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부정적 측면은 물신화(物神化) - 맑스철학의 기본 문제의식이 되었던 것이죠. 유물론에 기반한 맑스의 해법도 결국은 물질 중심의 사고와 한계를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긍정적 측면은 근대인의 자발성과 자유의 토양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고 긍정적 측면을 토대로 어떻게 하면 한 단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 개인주의를 넘는 새 지평 

  직면한 문제를 풀고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길에서 저는 긍정적 측면을 주로 하여 낙관적 관점에 서는 것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우리 사회에 혼란을 극복해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시작점들이 우리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질적 발전의 측면에서도 개방과 경제성장을 통해 절대빈곤으로부터 탈출했고, 의식주 생활전반에 걸쳐 풍부한 생산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발견이란 측면에서도 평범한 직장인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라는 책의 제목이 보여주고 있듯이 어떤 권위나 사회적 억압으로부터도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자유인들이 넘쳐흐르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역사에 비약은 없고 근대의 성숙조건을 채우지 않고는 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학창시절 학과사무실 벽면에 걸려있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4자성어가 떠오릅니다. 물의 특성은 만물을 키워주지만 그 공을 남과 다투지 않습니다. 항상 낮은 곳에 임하여 결국 큰 바다를 이룹니다.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를 때 아주 작은 구덩이가 있어도 그것을 다 채우면서 기다렸다 흐름을 계속 이어갑니다. 개인주의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은 개체를 넘어선 공동체의 통합성, 즉자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숙의성, 철인왕에서 말하는 통찰력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통합성, 숙의성, 통찰력이 자칫 높은 추상적 수준이 가져오는 애매함과 개체를 넘어 형성된 권위로 말미암아 현실에 실존하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와 역동을 억압할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것은 전문성에 의존하는 앨리트주의나, 더 우수한 비교우위를 겨루고 선택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물질적, 과학적 발전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공유기반과 고도의 사회적 신뢰성의 토대 위에서 집단지성을 통해 함께 만들어가는 단계로 진화해야 합니다.
  개인에게 엄청난 양과 질의 수련(도닦기, 학습)을 요구하지 않고도 웬만한 것은 저절로 가능해진 토대를 갖게 된 사회, 낚시하고 놀이를 하고 있어도 생산력이 담보되는 사회, 국가폭력과 저항폭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소멸해 가고 생활폭력(언어폭력 포함)의 조정능력이 향상되고 있는 사회, 우리는 이 얼마나 좋은 신세계에 살고 있습니까? 과학자들에 의하면 복잡계의 사회에서는 인위적 질서보다는 자생적 질서가 더 생명력을 갖는다고 합니다. 과학이 고도로 발전하고 사회가 엄청나게 복잡해진 오늘 현대사회에서 자율과 조화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은 중용(中庸)의 길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사회에서 중용의 길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현재 한국사회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헌신이 조롱받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래봤자 너만 손해야”라고 손가락질 받기 십상입니다. 철학자 윤평중의 표현을 빌리자면 “원자화된 개체와 미성숙한 공동체가 엉겨붙어 이성적 주체의 출현과 사회적 합리화가 지체되는 형국”입니다. 건전한 시민정신, 성찰적이고 책임있는 시민주체의 등장이 필요합니다. “공동체의 가치를 포용하면서도 개체의 중요성을 앞세우고 좋음의 중요성을 시인하면서도 옳음의 정립을 선결하는 것”은 현 단계 우리가 함께 취할 수 있는 중용의 지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도(中道), 중용의 길을 추구하는 것은 헛된 꿈이 아닙니다. 실사구시적 태도와 끊임없는 연찬의 힘으로 확대가능한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상주의적 지향과 사이 넘어 
 앞에서 민주화 세대의 양면성 중 어두운 측면으로 좌경혁명운동의 후과를 언급했었는데요 그 자체에도 양면성이 있습니다. 암(暗)이 아니라 명(明)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 노력의 헌신자들이 추구했던 현실모순의 극복을 위한 근본주의적 모색의 측면이 그렇습니다. 크게 보면 근대를 넘어서기 위한 문명사적 전환, 철학적 실천의 모색이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청년 ×86세대들의 몸부림은 90년대 중반 이후 현실의 자각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 일부는 현실정치로 흡수되어 들어갔고 또 다른 일부는 공동체운동 등 새로운 운동의 모색으로 투신합니다. 물론 기성 세대가 이미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증명된 사실들을 외면하고 자기만의 미망에 사로잡혀 철지난 레코드를 틀어대고 있는 것은 정말 우습고도 볼썽사나운 일이 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청년 세대들의 이상주의적이고 혁명적인 사고와 시도들을 이해하고 용인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성질서의 관성적 틀에 가두어 두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우리 앞에 바짝 다가온 가까운 미래의 과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세대를 넘어 인류의 공동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로 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생태계와의 공존 문제,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어서는 특이점의 도래와 같은 과학기술발전과 인간의 통제 능력 간의 모순해결을 위해 우리는 힘을 합해야만 합니다.
  진영을 넘어 세대 간의 대화가 절실합니다. 오픈된 자세로 열린사회를 이루어야 합니다. 관용의 정신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수평적 대화토론으로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찾아가는 연찬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요즘 ‘안녕하세요 내가먼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상대방의 손을 잡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장강은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며 흐릅니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입니다.

2021년 1월 10일 일요일

세대공감연찬 모두발언(2020.2.)

세대공감연찬회 토론문 : 박홍순


 저는 지난 번 1차 세대공감연찬회에서의 토론을 통해 지금 우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과 혼란의 원인과 관련하여 ‘압축적 근대화’과정에서 배태된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언급했던 바가 있습니다. 노장청세대에 스며들어 있는 각각의 특성들을 서로 대립하고 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을 위주로 미래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기분좋은 변화를 만들어가자고 하였습니다. 우리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의 보편적인 요구인 ‘자유의 확대’와 ‘공정의 실현’에 대한 욕구를 기본 동력으로 삼아 개인주의를 넘는 새 지평으로 나아가자고 했습니다. 

 최근 우리는 이른바 ‘조국사태’를 겪으면서 한국사회의 주도적 정치문화의 민낯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집단들 간에 벌어지는 점입가경의 갈등심화현상은 그것을 지켜보는 지각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뼈아픈 탄식과 각성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감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 각성과 결단이 자각과 성찰에 기반한 것이어야 진정성을 신뢰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서 연유하는 사안에 대해 그 옳고 그름을 가려 현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자 하거나 상대세력을 소멸시키기 위한 공격의 무기로 이용하고자 할 때는 갈등을 더 악화시고 문제를 복잡하게 더 꼬이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야 하고 부정적인 측면에 사로잡히지 말고 긍정적인 측면을 위주로 바라보고 그 점을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한국 정치문화의 위기를 극복해나가기 위해서는 그동안 이남곡선생님이 줄곧 말씀해오신 협치와 연정의 관점에 입각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좌우 구분과 정립이 이미 무의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세력 간의 협치와 연정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입니다. 현존하는 정치세력과 정당별로 각기 보다 주요하게 대변하는 측면이 있어 여러 정당 간에 경쟁하고 연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실제 한 정당 안에 세 가지 요소가 모두 들어있다는 점도 고려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사실 여론향배에 아주 민감한 현대의 주류 정당들 간의 노선의 차이가 그닥 크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 다만 어떤 형태의 연정이라도 미래의 씨앗을 키워가는 방향에서 우선적 배려가 있는 것이 전체 공동체의 진보를 위해 지혜로운 선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는 물질적, 과학적 발전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공유기반과 사회적 신뢰성을 토대로 집단지성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고도로 발전하고 사회가 엄청나게 복잡해진 오늘 현대사회에서 자율과 조화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권위나 사회적 억압으로부터도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새로운 세대들이 맘껏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환경을 조성하면 좋겠습니다. 새로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수용적인 태도가 중요합니다. 관용의 정신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수평적 대화토론으로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찾아가는 연찬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최근 제가 살고 있는 강남구에서는 ‘Me Me We GangNam’ 이라는 스타일브랜드를 새로 제정하고 “나, 너, 우리가 힘께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품격강남”을 만들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미미위강남’ 도입의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강남은 외형적으로 물질적으로는 우리나라 대표도시이자 1등 도시입니다. 또 앞으로도 105층 GBC빌딩과 코엑스 7개층 지하도시 등 국제교류복합지구개발로 글로벌 스마트 도시로 발전해 갈 예정입니다. 모든 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사회는 여전히 반강남정서가 존재합니다. 물질적인 측면과 경쟁적 비교를 통해서는 진정한 행복과 자부심을 가져올 수 없다는 자성이 있었습니다. 외형적 성장에 걸맞게 함께 더불어 살며 나누고 베푸는 지역공동체로 거듭 나야 합니다. 사람 향기 나고 이웃 간에 정이 넘쳐나는 따뜻한 강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강남에 사는 것이 자기 스스로도 자랑이자 긍지가 되도록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자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진정으로 존경받는 강남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시의 브랜드를 새롭게 이미지 메이킹하고 우리 각자 내면에 기분좋은 변화를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역사에 비약은 없고 근대의 성숙조건을 채우지 않고는 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합니다.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를 때 아주 작은 구덩이가 있어도 그것을 다 채우면서 기다렸다 흐름을 계속 이어갑니다. 물의 진짜 미덕은 남의 더러움을 씻어주면서 남을 더럽힐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먹물이 번진 물을 깨끗이 하는 좋은 방법은 계속해서 맑은 물을 부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민관협치란 무엇인가(2021.1.강남라이프)

<민관협치 강남공감> 
평범한 다수가 똑똑한 소수보다 더 뛰어난 가치를 창출한다. 
박홍순(거버넌스센터 이사, 강남구 자치협력관) 

  12인의 성남 사람들(12 Angry Men)이란 영화가 있다.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소년의 유죄 여부를 가리는 배심원 열두 명 가운데 대다수는 법정에 제출된 증거와 증인이 압도적으로 소년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쉽게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이 예상되었지만 기존의 권위에 의문을 품은 배심원들이 하나하나 의문점을 제시하고 토론되면서 결국 최종판결은 극적으로 무죄 방면을 선고하게 된다. 배심원 가운데 유일하게 잭나이프 사용경험이 있는 슬럼가 출신의 공장노동자 5번 배심원의 의구심으로부터 재검토가 시작되고, 거동이 어려운 팔순노인 9번 배심원의 경험에서 나오는 문제제기에 절름발이 목격자 증언의 신빙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며. 안경을 벗고 쉬고 있다 우연히 떠오른 주식중개인 4번 배심원의 순간적 깨달음이 근시 여성 목격자 증언에 문제가 있다고 배심원들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12인의 성남 사람들”은 평범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접근하는 사람들이 우수하지만 유사한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사람들보다 더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서로 다른 문제 해결 방법을 가진 사람들은 상호보완적인 접근 방법으로 해결책을 개선할 수 있다. 민관협치의 원리가 바로 이와 같다. 지금 여러 지방정부에서 민관협치가 중요한 정책으로 채택되어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주민들을 지역문제해결의 파트너로 초대하여 더 훌륭한 해결책을 찾기 위함이다. 민관협치란 행정이 가지고 있던 권한을 주민과 함께 나누어 지역의 문제를 찾아보고, 공론을 통해 해결 방안을 만들고, 같이 실행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동안 우리는 자신을 대신할 유능한 대표자들을 뽑아 정치를 맡기고 시험을 통해 선발된 행정전문가들에게 공공사무를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시대와 환경이 변화하였다. 이제 더 이상 똑똑한 몇 몇 사람들에게 일을 맡겨놓고 뭔가 혜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사회가 거대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시민들의 요구와 필요도 세분화되고 더 이상 행정 혼자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지금 시대는 시민이 행정을 대상으로 민원을 제기하거나,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시대를 넘어 지역사회 문제해결을 위해 공동생산자로서 함께 노력해야하는 시대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운 경제법칙으로 긴 꼬리(long tail)법칙이 주목받고 있다. 긴 꼬리 법칙을 이해하려면 거대한 공룡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지금까지 기업의 수익을 좌우한 것이 20%의 머리 부분이었다면, 인터넷 세상에서는 80%의 꼬리가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게 긴 꼬리 법칙의 요지다. 사소한 다수가 핵심적인 소수보다 뛰어난 가치를 창출한다는 이론이다. 긴 꼬리 효과는 일단 생성되면 스스로를 확대재생산하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디지털 혁명이 사회적 다양성을 지속적으로 증대시킨다는 긴 꼬리 효과 이론은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늘려주면 공공선에 더 부합하는 판단을 할 수 있고 문제해결 능력을 높인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제 스마트 도시를 지향하는 강남구가 앞으로 구현해야 할 행정방식은 바로 민관협치 행정이다. 지금 강남구는 도시를 뉴디자인 해나가고 있다. 거리와 공간과 같은 외형적인 디자인의 리뉴얼뿐 아니라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 행정의 방식도 뉴디자인해야 한다. 주민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품격 높은 행정, 신뢰와 협력이 일상문화가 되는 강남공감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민관협치 기획 시리즈 연재가 시작됩니다. - 민관협치에 대한 이해를 돕고 생생한 현장사례를 소개하며, 주민생활과 구정의 여러 분야에서 민관협치의 방안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 전문가와 주민 칼럼, 관계자 인터뷰, 현장탐방 취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K-민주주의 토론(2020.9.동아시아연구원)

K-민주주의를 말하다(시민참여) 토론 참고메모


 1. 한국 정치문화와 시민사회, 무엇이 문제인가?

 ○ 풀뿌리 주민자치, 거버넌스 분야에서 지난 20여년을 활동해온 토론자는 지역이 대안이라는 희망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작은 힘이나마 현장을 지키려하고 있지만 현실은 점점 늪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야할지? 우리 사회의 실태를 보고 있자면 점점 더 코로나블루와 같은 심리상태에 빠져듦을 숨길 수가 없다. -우리사회가 빠진 늪
 ○ 지금 우리사회는 점차 헤어나기 힘들어지는 깊은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 늪은 ‘과거’라는 늪과 ‘진영’이라는 늪이다. 요즘 각종 여론매체 등 우리의 시민사회와 정치문화의 상태를 보면 심리적 내전 상태라고 할 만큼 분열과 분노 그리고 증오가 심각하다.
 ○ 이 내전은 총칼이 아니라 주로 ‘말’을 무기로 하고 있다. 그나마 총칼이 바로 무기로 나오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 우리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말이 있다. 말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위선이 되기 쉽다. 내로남불이 되기 쉽다. 특별히 악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구나 빠지기 쉽다. - 포퓰리즘의 창궐과 위험성 

○ 포퓰리즘이 전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와 같은 정치지도자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새로운 위기인 것처럼 포퓰리즘은 정치문화적 측면에서 그렇다.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포퓰리스트는 오로지 자신들만이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자신들만의 도덕적 이상을 국민의 이름으로 포장한다. 다양성을 파괴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온다. 이들은 마치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마냥 폭주한다. 타협과 협력의 정치를 부정한다.
 ○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은 시민의 참여를 왜곡한다는 점이다. “민중을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라며 내세우는 명분과는 달리 일부 여론에 편승하거나 그것을 증폭시키면서 시민의 참여를 자신들의 진지를 강화시키는 재물로 사용한다. 시민사회의 형성과 자발적 참여는 근대민주주의사회를 가능케 한 근본적 토대이다. 시민사회의 성숙정도에 맞추어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그 건강성과 회복력을 높이는 길이야말로 위기의 수렁을 넘어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풀뿌리 생활현장에서의 민주주의, 숙의와 공론, 자치와 협력 같은 것이 그것이다.
 ○ 미투문제와 같은 새로운 젊은 세대의 의제와 담론도 왜곡시켜 이용해먹고, 뉴디미어 소통 공론공간도 가짜뉴스와 닫힌 커뮤니티 안에서의 자기증폭과정을 통해 오염시킨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편을 가르고 점점 더 확증편향을 심화시키고 그를 통해 집단적-패거리적 이해를 관철시키는 데로 귀결된다. 포퓰리즘의 활용은 좌우가 따로 없다. 정치적 권력에 근접해있는 자들이 직접 대중을 상대하고 대변하겠다고 나선다. 자신들이 이미 기득권자임을 망각하고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적으로 판은 신흥 기득권의 수호자 대(對) 전통 기득권자들의 패권다툼장으로 변질된다. 사이비 보수와 모지리 진보가 쌍끌이로 나라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2,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과 혜안으로 울림을 주고 있는 남곡 선생님의 생각을 빌어 우리 사회가 봉착한 문제와 헤쳐나갈 활로에 대해 조금 접근해보려고 한다.
 ○ 고정불변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무상(無常)이라고 한다. 분리독립된 것은 없다. 그래서 무아(無我)라고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바탕에서 과거라는 늪을,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바탕에서 편가름이라는 늪을 통과해야하는 것이 우리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큰 길이라고 본다.
 ○ 선입견, 도그마, 신념체계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바른 견해(正見)이다. 어떤 과정을 통해 정견에 이르는가? 자기 감각과 판단을 통해서 탐구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 그 자각을 유지하는 것이 공공(空空)의 의미이다. 자기 생각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다른 생각에도 열려 있는 상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향해 함께 서는 것이다.
 ○ 중도는 이 늪에서 벗어나 실사구시(實事求是)하고 구동존이(求同存異)하는 길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실사구시의 유연(柔軟)함과 구동존이의 연대(連帶)이다.이것이 현시기 진보를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 중도(中道)는 역동적인 균형추에 비유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마치 괘종시계의 시계추처럼 끊임없이 좌우의 양극단으로 요동쳐오면서도 가운데로 수렴되어 온 역사이다. 지난 세기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결만 해도 그렇다. 다만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총칼로 죽이는 대신 말이 무기로 되고 있다는 것이 나아졌다면 나아진 것일까?
 ○ 민심(民心)은 집단지성에 의해 의식의 보편적 진화로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인간이라는 종(種)의 특성으로 볼 때 그 존속과 번영, 자유와 행복의 가장 믿음직한 보루(堡壘)는 집단지성의 진화(질적 도약)가 아닐까? 문명전환은 이 각자에게 있는 균형추가 집단지성으로 진화할 때 그 모습을 나타낼 것으로 본다.
 ○ 근대 민주주의의 이념은 자유와 평등, 박애이다. 대체로 자유를 강조하는 것이 보수우파, 평등을 강조하는 것이 진보좌파다. 자유와 평등은 그 특성상 서로 모순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새도 양 날개로 균형을 잡아 앞으로 날아갈 수 있듯이 서로를 동반자로 삼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안다)의 지혜가 필요하다. 보수를 온고, 진보를 지신으로 삼아 좌우의 양 날개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 당장 눈에는 잘 안 띄지만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만드는 토대, 앞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바로 박애(博愛)가 아닐까? 생각한다. 박애에 대한 해석도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지만, 지금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예수의 사랑, 석가의 자비, 공자의 인(仁)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인류보편적인 형제애, 연대감,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성 등이 위기마다 고비마다 분열과 역경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仁)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말을 현대적으로 이해하면 ‘아집을 넘어서서 사람들과 사이좋아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곧 ‘개체성을 넘어서 사회성을 갖추는 것’이다. 지금 시대에 연고(緣故)주의는 진정한 사회성이라고 볼 수 없다. 3. 미래를 향한 긍정적 관점과 낙관적 사고

 ○ 토론자는 코로나블루와 같은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긍정적 측면을 먼저 보고 낙관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형국은 사이비 보수와 모지리 진보가 쌍끌이로 나라를 위기로 끌고 가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또 포퓰리즘의 득세가 정상적인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맞다.
 ○ 하지만 우리 사회는 촛불의 힘으로 상징되는 시민사회의 성숙한 저력을 갖고 있다. 전후 최빈국에서 이제 당당히 원조를 줄 수 있는 놀라운 한강의 기적을 만든 나라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K-방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드라이브스루와 같은 거버넌스 관점의 대응과 성숙한 시민의식, 지방정부의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 등은 살려나가야 할 장점이다. *) k-방역 참여 시민 의식 조사 참조
 ○ 미래사회를 준비할 수 역량들과 가능성들을 키워가야 한다. 우리 젊은이들 문화체육분야에서 세계적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 어디 몇몇 특출난 예외에서 비롯된 일일까? 우리 젊은 세대 개개인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와 세계화된 감각이 보편화되지 않았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ICBM(IoT, Cloud, Big Data, Mobile)과 디지털트윈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과학기술조건과 사회문화 환경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도 이러한 젊은 세대들의 긍정점을 집단지성의 도약으로 연결되도록 자리를 깔아주는 기성세대들의 책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파편화된 개인주의적 문화는 점점 더 보편적 환경으로 확산, 심화되고 있다. 1인가구, 혼밥, 긱 이코노미(Gig Economy) 등으로 상징되는 개별화된 현대사회의 라이프스타일과 그에 동반한 사회적 의식과 문화현상은 일시적인 것도 아니고 청산해야할 대상도 아니다.
 ○ 참여민주주의라는 공적 의제가 개인을 억압하는 ‘꼰대’스러운 당위로 인상지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 아예 관심 밖의 흘러간 옛노래로 왕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 개별화된 주체들이 훨씬 확장된 느슨한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특성에 비추어볼 때 블록체인 기반의 신뢰와 참여는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접목할 수 있을까?
 ○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한 플랫폼이 자기조직화 가능케 하는 신뢰성을 담보, 분산성, 익명성, 투명성, 안정성 보장 수직적 위계적이 아니고 수평적, 개인들이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특별한 중심이 없이 분산되어, 아래로부터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가고 새로운 규칙에 의해 더 높은 복잡한 단계로 나아간다. 개별 행위자가 스스로의 학습과 성장을 통해 큰 사회조직을 이루어나간다, 개별행위자의 각각의 능력보다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네트워크 능력이 보다 중요하다
 ○ 내안에 너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내장한 새로운 의사결정 민주주의 시스템과 공공서비스 공유플랫폼은 ‘내 안에 너 있다’(개체 안에 전체가 온전히 포함되어 있다)라는 표현으로 비유할 수 있는데, 마치 줄기세포 하나 속에 경우에 따라서는 신체 여러 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자율적 ‘자기조직화’가 가능한 사회적 연결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네트워크가 수시로 개별을 제약하고 규제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주체(개인)의 자유도가 상승하는 것을 보장하고 몰입을 통한 생산성의 고도화를 촉진하며, 정부와 같은 제3자적 권위에 의한 간섭과 표준에의 강제가 아닌 다양성의 인정과 배려, 있는 그대로 보아주기, 건강한 공존이 가능하고, 그리 하여도 공동체 질서는 유지되고 신뢰는 상승한다는 원리가 성립할 수 있다.

지방정치 의회중심성 강화, 경기도의회 토론문(2020.10)

거버넌스시대, 지방정치에서 의회의 중심성 강화 

 박홍순 


 발표자는 로컬 거버넌스 발전을 위한 캠페인에서 ‘지방정치에서 의회의 중심성 강화’라는 매우 중요한 의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협치는 단순히 행정과 시민사회와의 협력강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발표자가 강조하고 있듯이 로컬 거버넌스는 행정-의회-시민사회 간의 횡적 층위에서의 협력과 광역지방정부와 기초지방정부 간의 종적 층위에서의 협력을 모두 포함하고 있고 특히 정치 거버넌스의 선구적 실험이었던 경기 연정의 경험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정당, 정파적 편가름의 늪을 넘어서기 위한 연합정치의 새로운 정치사회문화 형성과 결합될 때 실효성과 전망을 획득해나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의회의 중심성에 대한 자각과 적극적 역할모색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정부구성 유형이 기관대립형(행정부와 의회 견제 모형)이 당연한 것처럼, 이미 주어진 고정불변인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선진 민주주의 국가 어디를 찾아보아도 유권자의 대의기관인 의회가 단순 견제 감시 기능으로 취급되고 행정부와 입법부가 분절적으로 대립하고 파당 간의 분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구유럽의 민주주의 전통은 당연히 의회 중심주의이고 의회를 중심으로 정파 간에 서로 협의하여 집행부를 구성하고 역할과 책임을 함께 나누어 지역사회를 운영해나가는 연합정치, 합의제 민주주의가 발전해왔고,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의회를 중심으로 정책결정기능과 집행기능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기관통합형 지방정부형태가 보다 보편적인 운영형태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87년 체제가 성립된 지 30년을 훌쩍 넘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고 고생하지 말고 새 옷으로 업그레이드해야 된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지방자치가 부활되어 운영된 지도 내년이면 30년을 바라보고 있다. 자치와 분권이 시대의 화두로서 제기된 것을 넘어 합의된 실천정책으로 채택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건만 이렇게 제자리 걸음 만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여러 핑계될 것 없이 지방정치 주체들의 각성과 결집이 부족함에 결정적 원인이 있음을 자성해봐야 할 때이다.
 의회의 역할과 관련하여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논하는 의견도 많이 있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의 보완을 통한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숙을 도모하는 것과 별도로,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적 기관인 의회와 의원들의 권능과 역할 자체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논의가 흐르는 것은 조심해야할 지점이다. 시대의 발전과 함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할 때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은 과거의 엘리트 중심 체제의 시효가 한계에 다다랐고 우월적 지위를 통한 배타적 권한 행사와 권위주의의 유지, 재생산을 경계하자는 것이지, 올바른 대표성의 행사나 집단지성시대에 걸 맞는 공론조성 촉진자로서의 스마트한 리더십 역할로의 진화를 무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발제자의 ‘거버넌스 캠페이너’로서의 지방의원들의 새로운 역할 제시는 매우 신선하고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구체적 활동 방안으로 제안하고 있는 내용들도 의회의 전통적 역할과 관련된 입법연계활동분야에서 거버넌스 영향 평가 제도 도입, 거버넌스 친화형 예산, 인사 제도 도입 등의 활동이 제안되었고, 주민자치 확대와 일상민주주의활동분야에서 정기적 주민토론회 개최, 주요 시정이슈에 대한 공론장 형성, 시민민주주의학교 등의 활동이 제안되었다. 지역현안 이슈, 갈등 사안에 대한 모더레이터 역할과 거버넌스 포럼, 모임, 조직 구성과 연대활동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구체적 활동제안들은 시대환경에 맞춰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거버넌스 캠페이너로서 역할해야 한다는 새로운 의원상을 선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