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정치문화와 시민사회, 무엇이 문제인가?
○ 풀뿌리 주민자치, 거버넌스 분야에서 지난 20여년을 활동해온 토론자는 지역이 대안이라는 희망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작은 힘이나마 현장을 지키려하고 있지만 현실은 점점 늪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야할지? 우리 사회의 실태를 보고 있자면 점점 더 코로나블루와 같은 심리상태에 빠져듦을 숨길 수가 없다.
-우리사회가 빠진 늪
○ 지금 우리사회는 점차 헤어나기 힘들어지는 깊은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 늪은 ‘과거’라는 늪과 ‘진영’이라는 늪이다. 요즘 각종 여론매체 등 우리의 시민사회와 정치문화의 상태를 보면 심리적 내전 상태라고 할 만큼 분열과 분노 그리고 증오가 심각하다.
○ 이 내전은 총칼이 아니라 주로 ‘말’을 무기로 하고 있다. 그나마 총칼이 바로 무기로 나오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
우리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말이 있다. 말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위선이 되기 쉽다. 내로남불이 되기 쉽다. 특별히 악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구나 빠지기 쉽다.
- 포퓰리즘의 창궐과 위험성
○ 포퓰리즘이 전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와 같은 정치지도자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새로운 위기인 것처럼 포퓰리즘은 정치문화적 측면에서 그렇다.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포퓰리스트는 오로지 자신들만이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자신들만의 도덕적 이상을 국민의 이름으로 포장한다. 다양성을 파괴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온다. 이들은 마치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마냥 폭주한다. 타협과 협력의 정치를 부정한다.
○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은 시민의 참여를 왜곡한다는 점이다. “민중을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라며 내세우는 명분과는 달리 일부 여론에 편승하거나 그것을 증폭시키면서 시민의 참여를 자신들의 진지를 강화시키는 재물로 사용한다. 시민사회의 형성과 자발적 참여는 근대민주주의사회를 가능케 한 근본적 토대이다. 시민사회의 성숙정도에 맞추어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그 건강성과 회복력을 높이는 길이야말로 위기의 수렁을 넘어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풀뿌리 생활현장에서의 민주주의, 숙의와 공론, 자치와 협력 같은 것이 그것이다.
○ 미투문제와 같은 새로운 젊은 세대의 의제와 담론도 왜곡시켜 이용해먹고, 뉴디미어 소통 공론공간도 가짜뉴스와 닫힌 커뮤니티 안에서의 자기증폭과정을 통해 오염시킨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편을 가르고 점점 더 확증편향을 심화시키고 그를 통해 집단적-패거리적 이해를 관철시키는 데로 귀결된다. 포퓰리즘의 활용은 좌우가 따로 없다. 정치적 권력에 근접해있는 자들이 직접 대중을 상대하고 대변하겠다고 나선다. 자신들이 이미 기득권자임을 망각하고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적으로 판은 신흥 기득권의 수호자 대(對) 전통 기득권자들의 패권다툼장으로 변질된다. 사이비 보수와 모지리 진보가 쌍끌이로 나라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2,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과 혜안으로 울림을 주고 있는 남곡 선생님의 생각을 빌어 우리 사회가 봉착한 문제와 헤쳐나갈 활로에 대해 조금 접근해보려고 한다.
○ 고정불변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무상(無常)이라고 한다. 분리독립된 것은 없다. 그래서 무아(無我)라고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바탕에서 과거라는 늪을,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바탕에서 편가름이라는 늪을 통과해야하는 것이 우리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큰 길이라고 본다.
○ 선입견, 도그마, 신념체계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바른 견해(正見)이다.
어떤 과정을 통해 정견에 이르는가? 자기 감각과 판단을 통해서 탐구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 그 자각을 유지하는 것이 공공(空空)의 의미이다.
자기 생각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다른 생각에도 열려 있는 상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향해 함께 서는 것이다.
○ 중도는 이 늪에서 벗어나 실사구시(實事求是)하고 구동존이(求同存異)하는 길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실사구시의 유연(柔軟)함과 구동존이의 연대(連帶)이다.이것이 현시기 진보를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 중도(中道)는 역동적인 균형추에 비유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마치 괘종시계의 시계추처럼 끊임없이 좌우의 양극단으로 요동쳐오면서도 가운데로 수렴되어 온 역사이다. 지난 세기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결만 해도 그렇다. 다만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총칼로 죽이는 대신 말이 무기로 되고 있다는 것이 나아졌다면 나아진 것일까?
○ 민심(民心)은 집단지성에 의해 의식의 보편적 진화로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인간이라는 종(種)의 특성으로 볼 때 그 존속과 번영, 자유와 행복의 가장 믿음직한 보루(堡壘)는 집단지성의 진화(질적 도약)가 아닐까? 문명전환은 이 각자에게 있는 균형추가 집단지성으로 진화할 때 그 모습을 나타낼 것으로 본다.
○ 근대 민주주의의 이념은 자유와 평등, 박애이다. 대체로 자유를 강조하는 것이 보수우파, 평등을 강조하는 것이 진보좌파다. 자유와 평등은 그 특성상 서로 모순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새도 양 날개로 균형을 잡아 앞으로 날아갈 수 있듯이 서로를 동반자로 삼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안다)의 지혜가 필요하다. 보수를 온고, 진보를 지신으로 삼아 좌우의 양 날개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 당장 눈에는 잘 안 띄지만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만드는 토대, 앞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바로 박애(博愛)가 아닐까? 생각한다. 박애에 대한 해석도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지만, 지금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예수의 사랑, 석가의 자비, 공자의 인(仁)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인류보편적인 형제애, 연대감,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성 등이 위기마다 고비마다 분열과 역경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仁)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말을 현대적으로 이해하면 ‘아집을 넘어서서 사람들과 사이좋아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곧 ‘개체성을 넘어서 사회성을 갖추는 것’이다. 지금 시대에 연고(緣故)주의는 진정한 사회성이라고 볼 수 없다.
3. 미래를 향한 긍정적 관점과 낙관적 사고
○ 토론자는 코로나블루와 같은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긍정적 측면을 먼저 보고 낙관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형국은 사이비 보수와 모지리 진보가 쌍끌이로 나라를 위기로 끌고 가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또 포퓰리즘의 득세가 정상적인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맞다.
○ 하지만 우리 사회는 촛불의 힘으로 상징되는 시민사회의 성숙한 저력을 갖고 있다. 전후 최빈국에서 이제 당당히 원조를 줄 수 있는 놀라운 한강의 기적을 만든 나라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K-방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드라이브스루와 같은 거버넌스 관점의 대응과 성숙한 시민의식, 지방정부의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 등은 살려나가야 할 장점이다.
*) k-방역 참여 시민 의식 조사 참조
○ 미래사회를 준비할 수 역량들과 가능성들을 키워가야 한다. 우리 젊은이들 문화체육분야에서 세계적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 어디 몇몇 특출난 예외에서 비롯된 일일까? 우리 젊은 세대 개개인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와 세계화된 감각이 보편화되지 않았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ICBM(IoT, Cloud, Big Data, Mobile)과 디지털트윈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과학기술조건과 사회문화 환경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도 이러한 젊은 세대들의 긍정점을 집단지성의 도약으로 연결되도록 자리를 깔아주는 기성세대들의 책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파편화된 개인주의적 문화는 점점 더 보편적 환경으로 확산, 심화되고 있다. 1인가구, 혼밥, 긱 이코노미(Gig Economy) 등으로 상징되는 개별화된 현대사회의 라이프스타일과 그에 동반한 사회적 의식과 문화현상은 일시적인 것도 아니고 청산해야할 대상도 아니다.
○ 참여민주주의라는 공적 의제가 개인을 억압하는 ‘꼰대’스러운 당위로 인상지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 아예 관심 밖의 흘러간 옛노래로 왕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 개별화된 주체들이 훨씬 확장된 느슨한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특성에 비추어볼 때 블록체인 기반의 신뢰와 참여는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접목할 수 있을까?
○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한 플랫폼이 자기조직화 가능케 하는 신뢰성을 담보, 분산성, 익명성, 투명성, 안정성 보장
수직적 위계적이 아니고 수평적, 개인들이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특별한 중심이 없이 분산되어, 아래로부터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가고 새로운 규칙에 의해 더 높은 복잡한 단계로 나아간다.
개별 행위자가 스스로의 학습과 성장을 통해 큰 사회조직을 이루어나간다, 개별행위자의 각각의 능력보다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네트워크 능력이 보다 중요하다
○ 내안에 너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내장한 새로운 의사결정 민주주의 시스템과 공공서비스 공유플랫폼은 ‘내 안에 너 있다’(개체 안에 전체가 온전히 포함되어 있다)라는 표현으로 비유할 수 있는데, 마치 줄기세포 하나 속에 경우에 따라서는 신체 여러 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자율적 ‘자기조직화’가 가능한 사회적 연결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네트워크가 수시로 개별을 제약하고 규제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주체(개인)의 자유도가 상승하는 것을 보장하고 몰입을 통한 생산성의 고도화를 촉진하며, 정부와 같은 제3자적 권위에 의한 간섭과 표준에의 강제가 아닌 다양성의 인정과 배려, 있는 그대로 보아주기, 건강한 공존이 가능하고, 그리 하여도 공동체 질서는 유지되고 신뢰는 상승한다는 원리가 성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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