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7일 목요일

주민자치발전의 바람직한 정책방향(2017.여수 주민자치전국박람회)

 주민자치발전의 바람직한 정책방향

-주민자치회 전환문제를 중심으로-

 

박홍순

()커뮤니티허브공감 대표

 

 

차 례

 

1. 서 론

2. 주민자치회 정책의 추진경과와 한계

3. 주민자치 기본 개념과 원리의 재확인

1)주민자치역량의 강화와 주민참여의 조건

2)주민자치조직의 구성원리와 운영원칙

3)지역공동체거버넌스

4. 바람직한 주민자치 제도화의 정책방향

5. 지방자치단체들의 선도적 실험에서 배울 점

6. 주민자치회 만드는 과정이 관건이다

7. 맺음말

 

 

1. 서 론

 

우리에게 주민자치라는 개념은 두 가지 맥락에서 다가온다. 하나는 주민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나간다는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지향점과 관련된 맥락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17여 년 간의 주민자치센터 운영의 현실에서 출발한 주민자치회로의 전환과 관련된 맥락이다. 물론 둘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전자의 맥락에서 주민자치는 단체자치의 한계를 넘어선 지방자치의 발전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전통적인 문제의식과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직접민주제의 결합, 내지는 권력의 집중을 넘어 분권과 참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민주주의 발전에 관한 문제의식이 결합되어 있다. 후자의 맥락에서 주민자치는 행정과 시민의 협력문제, 주민들의 자치역량강화문제, 자치분권제도의 설계문제 등이 관련되어 있는데, 그것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부딪히는 다양한 과제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정책적 선택과 실천전략으로 연결되는 측면은 강하지만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한계에 빠지기 쉽다. 나무와 숲을 종합적으로 보아야 하며, 현장에 뿌리박고 주변의 움직임에 반응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한 방향을 향해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실 지난 17여 년 간의 주민자치센터 현장에서의 많은 실천경험들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며 우리들에게 앞으로의 진전을 위한 인식과 실천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또 주민자치회로의 전환문제가 제기되고 시도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그 지지부진함에 대해 크게 낙담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 주민자치현장의 현실지점에 근거해서 지금 형성되고 있는 환경과 기회를 잘 결합시켜나갈 수 있는 자산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촛불시민혁명으로 시작된 사회혁신과 지방분권개헌에 대한 사회적 열망과 정부의 정책의지는 주민자치 발전의 매우 유리한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민선5기 이후 여러 지역에서 시도되고 쌓여온 마을공동체, 주민참여예산제와 같은 지방자치 혁신사례와 경험들이 좋은 밑거름으로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주민자치회로의 전환문제를 중심으로 바람직한 주민자치 발전을 위한 정책방향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논의와 정책적 설계는 이미 지난 수년간의 과정을 통해 많이 논의되어오고 정책으로도 구체화되었던 바가 있기에 크게 새롭다거나 획기적인 방안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그동안의 논의와 실행과정에서 짚어지고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거나 역량의 부족 또는 외적인 여러 이유에 의해 배제되어왔던 핵심적 요소들을 살펴보고 향후 구현해나가야 할 정책방향을 재차 확인해보고자 한다. 그에 덧붙여 초기 주민자치회가 어떠한 원칙과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느냐 하는 문제 자체가 향후 주민자치회가 주민자치본연의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는 데 매우 관건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보고 이와 관련된 프로세스 한 가지를 제안해 보려고 한다.

 

2. 주민자치회 정책의 추진경과와 한계

 

18대 국회에서는 2010<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새로운 주민자치기구로서 주민자치회의 도입을 공식화하였다. 이후 대통령 산하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가 주민자치회 도입모델을 확정하여 행정자치부는 20137월부터 주민자치회 시범실시를 전국 31개 읍면동에서 진행하였다. 그런데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 목적은 시군구의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었고, 주민자치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이 포함된 것은 시군구 통합에 따른 읍면동 차원의 공백을 메울 자치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주민자치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의 시작이 그러했듯이, 주민자치회도 그 자체의 필요보다는 행정체제 개편에 부속된 조치로 다루어진 것이다. 당연히 정치적 행정적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고 그를 추진해나갈 밑으로부터의 동력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에서 규정한 주민자치회의 기능은, “1.주민자치회 구역 내의 주민화합 및 발전에 관한 사항, 2.지방자치단체가 위임 또는 위탁하는 사무의 처리에 관한 사항, 3.그밖에 관계 법령, 조례 또는 규칙으로 위임 또는 위탁한 사항이다. 또 주민자치회 구성과 관련하여 특별법에서는 주민자치회의 설치시기, 구성, 재정 등 주민자치회의 설치 및 운영에 필요한 세부사항을 따로 법률로 정하되, 주민자치회의 기능과 구성 등에 관한 세밀한 부분은 지방자치단체가 지방 환경을 고려하여 조례·규칙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였다.

20125월 지방행정체제개편위원회 근린자치분과가 제시한 주민자치회의 모델은 협력형과 통합형 그리고 주민조직형의 세 가지였다. 이 세 가지 모델은 공히 주민자치회의 권한을 기존 주민자치위원회의 권한보다 강화시켰다는 점에서 뭔가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하기도 하였다. 여러 논의와 검토를 거쳐 시행단계에서는 결국 이 세 가지 안 중 협력형을 최종적으로 선택해 시범실시를 하겠다고 결정한다, 그런데 이 협력형은 실제에 있어 이제까지의 주민자치위원회와 형태나 기능 및 역할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가장 현실안주적인 모델이었다. 시범사업을 책임진 안전행정부에서는 31개 시범지역을 선정하여 사업을 추진하면서 공개모집 방법에 의해 시범지역을 선정하였는데, 지역복지형, 안전마을형, 마을기업형, 도심창조형, 평생교육형, 지역자원형, 다문화 어울림형의 일곱가지 형태를 제시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해 신청하도록 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지방분권촉진위원회와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를 통합하여 새롭게 출범한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20156월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성과분석을 토대로 주민자치회 도입방안을 확정하였으나, 실제 실행에 적극 나서기보다는 2015년부터 2016년 말까지 시범실시 기간을 연장하고, 대상지역을 18개를 추가하여 49개 읍면동으로 확대하여 추진하는 등 시범실시단계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2016년말에서 2017년초에 걸친 촛불시민혁명 이후 들어선 새 정부는 지난 8, 읍면동주민센터를 공공서비스 플랫폼으로 혁신하는 사업방향을 밝히고 풀뿌리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주민자치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주민자치위원회를 개편해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하고 마을 계획 수립 권한을 주는 등 실질 권한을 부여해 명실상부한 주민 대표기구로 만들겠다"고 밝혀 새로운 기대를 품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시범실시과정에서 들어난 문제점들을 살펴보면 주민자치가 더 나아가가지 못하고 답보하고 있는 주요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다. 주민자치의 원리구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논의와 시행준비, 시행과정을 통해 계속 축소지향적으로 움직였다고 평가받을 수 밖에 없었던 시범사업은 결국 중앙부처 정책사업의 추진체로 주민자치회를 활용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양상을 보였다. 시범사업에 응모한 지방자치단체들도 주민들의 자치역량을 조직하고 그 의사에 근거한다기 보다는 사업예산을 확보하여 행정적 성과를 남기는 데 급급한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당초 주민자치회 도입을 위한 연구와 논의과정 속에서도 수차 확인되었던 기존 주민자치센터의 한계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었다. 주민자치위원회에 제도적으로 의결권이 없는 단순 심의 기능만 있는 이름만의 주민자치기구로 행정기관인 읍면동장의 자문과 협력기능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는 점, 주민자치센터는 그 근거조례의 명칭이 말해주고 있듯이 주민자치를 위한 주민들의 위원회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설로서의 센터에 치우쳐 있었다는 점, 주민자치위원은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표도 아니었고 기존의 지역 유지 집단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도하는 자치활동은 제한적이고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운영 등 대부분의 활동은 담당 공무원이 실질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는 점, 주민자치위원회의가 근린자치를 위한 의제설정이나 예산배정 등과 같은 자치적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없었다는 점,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의 상당부분은 건강, 여가, 문화 관련 강습 등으로 편성되어 있다는 점, 지역주민은 자치센터에 개설된 프로그램 이용자로서의 역할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고 적극적인 활동 참여자는 제한적이었다는 점 등이다.

주민자치회 시범실시의 실제 사례에서도 많은 경우 이러한 기존의 주민자치센터 및 주민자치위원회의 한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이미 시범사업이 실시 초기부터 그 정책적 한계가 지적되었던 사항들임에도 실제 시행과정 속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관성적으로 진행된 결과였다. 문제와 방향이 검토되고 제시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정책방향의 초점을 분명히 하고 이를 실현해갈 정책당국의 의지가 없고 혁신의 주체동력이 형성되지 못한 데 원인이 있었다. 주민자치는 사업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고 곧 주민자치역량의 성장과 확대가 관건인데 행정 주도의 추진방식은 사업 중심으로 흐를 수 밖에 없고 그 한계를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은 주민주도의 주민자치 추진이며, 이를 위한 적절한 환경의 조성과 지원이다. 결국 변화된 환경과 조건을 잘 활용하여 주민자치현장의 주체동력을 끌어모으는 길이 문제를 해결해가는 첩경이라는 것이다.

 

 

3. 주민자치 기본 개념과 원리의 재확인

 

1) 주민자치역량의 강화와 주민참여의 조건

신발끈을 고쳐 매고 다시 주민자치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첫 번째 무기는 주민자치에 충실한 기본 개념과 원리에 대한 재확인과 내면화이고, 이와 함께 또 중요한 것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일관된 제도화와 정책지원이 이루어지도록 바람직한 정책방향을 합의, 관철시키는 것이다.

주민자치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는 주민들의 자치역량의 강화이다. 자치역량의 강화는 개인적인 교육이나 당위의 강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웃들과 함께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주민들의 참여는 공적인 이해관계 자기의 이해가 아닌 가 있을 때만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공적인 이해는 참여의 결과로 합의된 것이지, 참여의 동기로는 현실적으로 잘 작동되지 않는다. 대개 사람들의 참여는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자기의 사()적 이해를 이야기하다보면, 공통의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공론장(共論場)을 통해 합의된 공감의 내용은 공론(公論)이 되는 것이다. 그 공감된 내용을 실천하기 위한 과정은 공론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공론장(公論場)으로 발전할 수 있다.

()가 주로 활동하는 무대인 생활세계(生活世界)와 공()이 위세를 떨치는 제도세계(制度世界)의 분열 및 괴리 상황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기 위한 토대로써 공공세계(公共世界)’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공공(公共)하는 철학의 발신자로 한국과 일본 철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김태창의 활사개공(活私開公)의 개념을 접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활사개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래 억압하고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었던 를 살리는 것, 활사(活私)’이다. 활사는 소멸의 대상이었던 사()에서 살림의 대상으로서의 사로 발상을 전환하자는 것이다. 다음으로 활사는 타자의 사를 살리는 것을 의미한다. 타자의 사를 죽이는 것은 결국 자기의 사를 죽이는 것으로 이어지고, 타자의 사를 살리는 것은 그대로 자기의 사를 살리는 데로 연동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과 사 사이의 대화(對話), 공동(共働), 개신(開新)을 통해 궁극적으로 공()의 구조개혁 즉 개공(開公)’을 하자는 것이 바로 공공하는 철학이 추구하는 활사개공의 올바른 의미이다. 이렇게 새로운 차원으로 열리는 공(開公)을 공공하는 철학에서는 공공(公共)’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자치의 주체인 주민이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것을 공공(公共)하는 철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주민자치의 의미와 원칙이 어떠해야할 지가 보다 분명해진다. 지역에서의 일상생활을 통한 조그마한 변화실천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이고 큰 힘이라는 믿음을 갖고 주민들이 자치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제도의 설계와 실행의 과정을 세심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자발적 참여를 위한 기본조건은 권한의 부여이다. 자기결정권이 부여될 때 사람들은 자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럴 때만이 자치의 본래의미 중에 한 짝인 자기책임성도 함께 간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참여의 개방성이다. ‘권한정보연줄을 먼저 가진 자에게 기회가 집중되고 독점되지 않도록 누구나에게 열려있도록 제도가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참여과정의 투명성이다. 주민자치요 직접민주주의를 얘기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주민들이 항상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참여과정이 누구나 지켜볼 수 있게 투명하게 운영되고 그 내용이 과감없이 전달된다면 참여의 민주성과 책임성이 담보될 수 있다.

2) 주민자치조직의 구성원리와 운영원칙

우리보다 먼저 지방자치를 꽃피웠던 외국의 주민자치조직의 구성원리와 운영원칙을 살펴보면 앞서 확인한 주민자치의 기본 개념과 원리가 어떻게 제도 속에 담겨 살아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 보다 명확히 다가오고 우리가 주민자치회를 설계하고 운영할 때 무엇을 중시해야 되는가가 분명해진다.

지방자치가 가장 발전되어있다고 하는 스위스, 민주주의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영국, 한국과 유사하게 중앙집권적 관료제도가 발전되어 있다고 하는 독일과 프랑스, 한국의 근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미국과 일본, 이렇게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발전에 참고가 될 수 있는 선진국이라 할 만한 그 어떤 나라의 지방자치를 분석해 봐도 공통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몇 가지 필수적인 원리가 있다.

먼저 우리나라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규모는 주민자치를 하기에는 지나치게 너무 크다는 점이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말이다. 선진국 지방자치단체(지방정부) 평균 인구는 영국이 12.8만 명, 일본이 6.7만 명으로 가장 크고, 대부분이 1~3만 명(핀란드, 벨기에, 네덜란드)이고, 1만 명 미만(이탈이아, 미국, 독일, 스페인, 스위스, 프랑스)인 경우도 많다. 특히, 프랑스와 스위스 꼬뮨의 평균 인구는 각각 2천명, 3천명에 불과할 정도로 규모가 작아도 기초자치단체의 지위를 부여하여 주민자치를 보장하고 있다. 한국의 기초자치단체인 시, , 구뿐 아니라 그 하위의 계층인 읍(19,787), (19,403), (4,300)의 평균 인구에 비해서도 훨씬 규모가 작은 수준이다. 인구가 많은 대도시 지역에는 대개 기초자치단체 산하에 일정 인구수 등을 감안한 지구위원회 같은 조직을 두어 준자치단체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의 예를 들면 2002년부터 주민자치조직인 지구위원회(conseil de quartiers)를 일정 기준 이상 코뮌의 경우(인구 8만명 이상)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하고 2만 이상 8만 이하에도 지구위원회 설치를 권고하고 있다.

다음으로 선진국 지방자치단체의 필수적인 원리는 각 자치단체가 중앙정부나 상급자치단체와는 별도로 독립성, 자주성, 인사권, 재정권을 갖고 있으며 기초자치단체가 먼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주체가 되고 부족한 것은 상급으로 나아가는 보충성의 원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하위 행정기관이 아닌 독립된 법인격을 갖고 대등한 위치에서 지방자치단체 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간 상호 간의 계약, 협약을 통해 지위를 인정받고 사무를 수행하고 있다. 유럽의 기초자치단체인 코뮌의 권한에는 선거·시민투표·시민발안 등의 정치적 권리를 비롯하여 학교복지교통경찰가스전기상수도하수도토지이용계획 사무를 처리하는 권한과 광범위한 과세권이 포함된다. 스위스 코뮌의 토지이용계획의 특징은 주민총회나 주민투표로 결정되며, 도시발전계획에 대하여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코뮌은 자유롭게 개인소득세와 법인 소득세를 부과할 수 있으며, 세목과 세율을 매우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과세권을 갖는다.

정식 지방자치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앞에서 예를 든 준자치단체인 프랑스의 지구위원회 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사법인의 지위가 부여되고 있으며 참여민주주의와 근린자치를 강화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별로 참여헌장과 지구위원회 헌장이 채택되고 있다. 이러한 헌장은 참여민주주의와 지구위원회의 관계, 지구위원회의 역할, 권한, 구성, 임기, 개선, 집행부, 분과위원회, 회계, 결산, 평가 등에 대하여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운영재원은 중앙정부, 광역자치단체 등으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것이 주를 이루고 있고, 회원의 회비가 재원의 일부가 되고 있다.

다음으로 선진국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의 운영방식은 우리나라처럼 의회와 집행부간의 기관대립형이 아니라 의회 중심의 기관통합형 운영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형태가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예외 없이 채택하고 있는 위원회형(Commission Form)이다. 주민에 의해 선출된 위원들로 지방의회를 구성하고, 이 위원들이 정책결정과 동시에 각 집행부서의 각 국()을 담당하는 형태를 띠며, 이사회라고도 한다. 이 경우 위원회 중 한 명의 위원을 시장으로 선출하게 된다. 지방자치의 전통이 있는 나라들은 모두 의회중심주의를 채택하는 것이 당연하며 좀 규모가 크고 전문적 행정서비스를 중시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의회-시지배인제(Council-manager Form)를 채택한다. 주민의 직선으로 선출되고 구성된 의회가 다시 행정기능을 담당할 전문행정관을 임명하는 정부형태이다.

여기서 예외가 되는 경우는 인구가 몇 백명 수준이어서 주민직접총회를 통해 자치단체를 운영하는 경우, 인구가 대략 25만명 이상의 큰 도시 지역에서 주민직선에 의한 시장을 뽑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남부독일이나 프랑스처럼 의회 의장을 겸임하는 기관통합형 운영을 가미하고 있고, 미국 도시지역과 일본처럼 강시장-의회형을 채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도 행정분야별로 독립된 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집행권한을 분산한다든가 의회에 단체장에 대한 불신임권을 주어 견제 장치를 충분히 마련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이 기관통합형 운영제도 도입의 필요성은 최근 들어 많이 거론되고 있는데 행정수반의 지나친 권력독점과 전횡에 따른 민주주의의 후퇴 및 무능과 부패현상의 발생, 단체장과 의회와의 불필요한 갈등과 정파 간의 대립으로 인한 효율성, 전문성, 책무성이 떨어지는 현상,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 등에 따른 시민들의 의식 향상과 참여욕구 증가에 대응해야 하는 거버넌스와 협치에 대한 요구 증가 등이 그 배경이다. 최근 민선 6기 경기도가 보여준 연정의 실험은 현행 기관대립형 기관구성형태로 인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의 기관구성형태가 다양화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자 정치적 실험이 되고 있다. 201412월 발표된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의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에서도 지방자치단체 기관구성 형태의 다양화를 위하여 현재의 단체장-의회 대립형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모형으로 단체장 권한분산형과 의회중심형의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3) 지역공동체거버넌스

다음으로 주민자치의 기본 개념과 원리를 생각해볼 때 반드시 함께 생각해 볼 문제가 지역공동체거버넌스(community governance)이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의 성숙과 발전이란 맥락에서의 주민자치를 접근해보면 당면한 선거제도 등의 정치개혁뿐만 아니라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다양한 대안적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와 시도들이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직접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결사체민주주의 등 새로운 시도들은 넓은 의미의 참여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에서 투표하는 것 이상의 일상적인 시민참여 과정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실천과정에서 형성되고 있는 주민자치의 개념은 지방정부의 구성방식 또는 통제방식으로서의 대의민주제 또는 직접민주제라는 원론적 해석에 머물지 않고, 마을 또는 동네단위의 적극적인 주민참여의 모습과 연계해 주민자치라는 개념이 쓰여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민주주의운동의 진일보한 역동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측면이라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 주민자치의 역동적 측면을 고무적으로 평가하고 지역공동체거버넌스라는 관점에서 그것을 정리하고 있는 대표적인 연구자가 곽현근이다. 그는 2015년 발표한 논문 주민자치 개념화와 제도화방안에서 이에 대해 분석, 정리하고 있다. 다음은 그의 주장 요지를 정리한 것이다.

주민자치는 지역’(local)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이고 지역공동체(community)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지역은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정도의 범위를 의미하는 일정한 장소를 말한다. 지역의 범위를 어느 정도 크기로 인식하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경험과 사회적 관계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주민자치는 지역주민과 장소에 대한 사회적, 심리적 유대를 가진 주민들로 구성된 지역공동체를 전제로 한다. 지역공동체는 주민들 사이의 사회적. 심리적 유대는 규모가 큰 도시나 국가단위보다는 작은 지리적 규모에서 형성되기 쉽다는 점에서 주민자치 논의의 초점은 동네 또는 마을 규모에 집중된다.

우리사회에서 주민자치 용어는 읍동의 주민자치위원회 제도와 연관되면서 행정과정의 주민대표 참여 또는 정부와의 상호작용의 의미를 주민자치에 접목시킬 것인가의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실제 지방자치의 원리로서 주민자치 개념이 지방정부를 주민의 통제와 영향력 하에 두겠다는 취지에서 유래한 것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주민대표를 통한 지방정부 행정참여가 주민자치의 본래 취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주민자치는 거버넌스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에서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논의되고 행정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부터이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그 뜻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하여 협력적 거버넌스(collaborative governance)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 협력적 거버넌스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공공기관들이 공식적이고 합의 지향적이며 숙의적인 성격을 띠면서, 정책의 결정 또는 집행, 또는 프로그램 또는 자산의 관리에 목적을 둔 집합적 의사결정 과정에 비국가적 이해당사자들을 직접적으로 관여시키는 통치의 장치로 정의한다. 이러한 협력적 거버넌스의 특징으로는 공공기관에 의한 주도, 비정부 행위자들의 참여, 상담을 넘어선 의사결정과정의 직접적 관여, 공식적 조직화,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 공공정책과 쟁점에 대한 초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협력적 거버넌스가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구현되는 것을 지역공동체거버넌스’(community governance)라고 할 수 있다. 지역공동체거버넌스는 하나의 집합체로서 지역공동체가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제들에 대해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체계와 문화를 의미한다. 지역공동체거버넌스는 사회의 통치방식이 '정부'로부터 거버넌스로 바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권이 국가의 소유물로 간주되는 단계를 넘어 지역공동체 구성원인 주민들로 옮겨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역공동체거버넌스로서의 주민자치를 논의할 때 그 주요한 양상은 상호작용적 참여의 실현여부이다. ‘상호작용적 참여는 주민집단이 지역의제의 공동분석, 실천계획 설계, 지역과 관련된 제도도입 또는 강화과정에 관여하면서 지역의 의사결정과 자원배분에 실질적 영향력을 가지게 됨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참여주민들은 해당 참여제도의 구조와 실천방식에 대해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다. 이 때 참여는 정부 프로젝트의 목적달성을 위한 단순한 수단의 의미를 넘어 주민의 권리로서 간주되고, 권리행사를 위한 체계적이고 구조화된 학습과정이 강조된다.

결국 주민자치는 지역에 대한 애착과 주민들 사이의 유대의 토대위에 집합적 역량을 구축한 주민들이 지역문제를 스스로 또는 정치행정과정의 참여를 통해 정부를 포함한 다른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해결해나가는 행위 또는 과정을 의미한다. 우리사회의 주민자치에 대한 관심과 제도화노력은 대의민주적 단체자치에 반영된 소극적 주민자치의 의미를 넘어서서 공동체 단위의 주민 역량강화와 공식적 정치행정과정의 참여라는 적극적인 의미를 주민자치에 부여하고 반영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주민자치 제도화, 특히 주민자지회를 실현하는 데 있어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모델화의 이론적 근거로 곽현근(2015)은 다음과 같은 두 유형의 유기적 연계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주민들이 민초의 공간에서 주민의 조직화를 통해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고, 정부와는 독립적으로 지역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율형주민자치다. 둘째, 지역공동체 대표 또는 조직이 행정과정(의사결정 및 집행)에 참여하면서 지역문제를 정부와 대등한 관계에서 함께 해결해가는 민관협치형주민자치다.

자율형과 민관협치형 주민자치는 현재 우리사회에서 진행되는 제도적 노력과도 연관지어볼 수 있다. 현재 중앙 및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마을만들기는 자율형 주민자치에 초점을 두는 반면, ’주민자치회시범사업은 민관협치형 주민자치를 염두에 둔 제도실험으로 간주할 수 있다. 많은 마을만들기가 정부지원 속에서 추진되고 있지만, 적어도 마을만들기 기본정신은 주민들이 동네 또는 마을 단위의 자율적 참여와 유대형성을 통해 해당 지역의제를 주민들 스스로 해결한다는데 놓여 있다. 반면, 주민자치회는 처음부터 최하위행정계층인 읍동 수준에서 도입되었고, 주민조직과 행정 사이의 협력을 전제로 제도화가 추진되고 있다. 또한 마을만들기와는 다르게 읍동에서의 주민을 '대표'하는 인사들(: 주민자치회 위원)과 정부와의 관계가 강조된다. 결과적으로 마을만들기 같은 자율형 주민자치에서는 촉진자, 촉매자로서의 정부역할이 요구된다면, 주민자치회 같은 민관협치형에서는 지역공동체 조직 또는 주민대표와의 대등한 파트너 또는 협력자로서의 정부역할이 추가적으로 기대된다.

주민자치회가 초대된 공간에서 실제 지역공동체 대표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주민참여예산제, 동네발전기획과 같은 실질적 제도가 읍동 단위에서 주민자치회와 연계해 추진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읍동 주민자치가 의미를 가지려면 다양한 사무가 읍동 단위에서 결정되고 집행될 수 있도록 읍동의 기능강화와 분권이 전제되어야한다.

 

 

4. 바람직한 주민자치 제도화의 정책방향

 

곽현근(2015)은 주민자치 제도화의 방향과 관련하여 다음의 여덟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1) 지역공동체 형성대표과정의 통합적 관점에서의 접근.

2) 주민자치위원회가 읍동장과 함께 공동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거나 행정에 설명을 요구할 수 있는 공식적인 권한부여.

3) 공동생산(co-production)의 시각에서 읍동 단위 행정서비스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

4) 주민자치위원들이 시민대표로서 행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적 구속력 부여.

5) 현 수준의 주민역량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주민역량 형성 또는 강화수단을 적극적으로 제도설계에 반영.

6) 동 자생단체의 정리 및 통합노력.

7) 지방정부 주민자치 담당조직 체제 정비.

8) 중간지원조직의 제도화 및 활성화.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방향들은 주민자치 및 지역공동체거버넌스의 핵심원리를 반영하면서도 현실조건과 실행의 구체성을 담보하는 데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 요소들을 정책방향으로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방향은 대체적으로 원칙적 방향과 현실적 조건을 함께 감안하여 실천적 측면에서 정책적 주안점을 잘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실제 실행과정에서는 기존의 관성과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거나 좌절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의지와 원칙을 갖춘 추진주체의 조직화와 구체적인 실천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를 기반으로 정책화하는 데서 견지해야 할 핵심적 지점 몇 가지를 짚어보면 다음과 같은 점들이다.

먼저 관련법의 제정과 개정, 그리고 지원체계의 정비에서 통합적 관점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민자치의 현장인 마을에서의 주민들의 생활은 통합적이다. 거기에는 학습도 있고, 활동도 있고, 경제도 있다. 평생학습이나 자원봉사활동, 사회적경제, 마을만들기, 지역복지, 문화여가 등 생활상의 여러 분야들이 따로 따로 놀지 않고 통합적으로 가려면 당사자 주민들의 자치력이 성장하도록 일관된 방향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현재 입법화되거나 추진 중인 마을만들기 또는 주민자치회 관련법들이 통합적 관점에서 같이 그림그려지고 유기적 연관성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또 사업담당부처 간 칸막이 현상이나 각개약진식 사업추진이 재발하지 않도록 운영시스템을 개선하고 정책결정과 예산권한을 가급적 지역주민현장과 가깝고 밀접히 결합할 수 있는 단위로 위임하여야 한다.

또한 관련 담당공무원의 전문성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개방형 직위가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주민들의 일상생활감각에 맞는 지원금 회계정산제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신뢰에 기반한 유연성과 책임성을 갖춘 독립적 지원재정 운영기관이 필요하며 중간지원기관이 민간자율적으로 운영되도록 보장해야 한다. 특히 효과적인 중간지원조직의 제도화를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민간조직으로서 공공영역의 지원을 받되 운영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받는 자율성의 원칙, 법적 근거를 가지고 충분한 예산 지원을 통해 안정적 활동이 보장되는 지속성의 원칙, 특정 부서가 아니라 지역공동체 관련 모든 부서의 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통합성의 원칙 등이 지켜지도록 세심한 제도설계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읍면동 주민자치회 단위의 자치와 협치를 위한 세부적인 권한사항들이 명확하게 상호 확인되고 실제 구현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구체화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밟아 나가야 한다. 두루뭉술하게 애매하게 표현되어 사문화되거나 기존 관성에 굴복되도록 해서는 안 되며, 주민자치회 관련 주체들이 끊임없이 이 과정을 자기 것으로 체화하도록 하는 과정을 축적해가야 한다. 주민참여예산제, 근린발전계획안 수립 등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파급력이 큰 사안부터 착수하여 성공의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민자치는 일방은 요구하고 떠들어서 가져가고 또 다른 일방은 민원에 시달리거나 방어에 급급한 관성을 탈피해서 서로가 Win-Win하고, 새롭고 더 만족스러운 공적 가치와 서비스를 생산해나가는 것이다. 공급자 중심의 생산 비용절감의 관점이 아니라 지역공동체와의 공동생산의 관점에서 읍동 기능을 바라봐야 하고, 지역공동체와의 파트너십 형성을 통한 읍동 행정기능 강화가 행정혁신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피부에 와 닿는 복지보건환경치안 등의 의제를 두고 뜻있는 주민(대표)들과 전문성을 갖춘 공직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함께 문제해결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정신인 주민자치의 모습이자 현대 행정이 요구하는 거버넌스의 실천이 될 것이다.

주민자치를 위한 행정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멍석깔기가 되어야 한다. 주민자치는 행정이 주도하거나 자신의 필요에 주민을 결합시키는 것이 기본이 되어서는 안 되고, 주민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주민 스스로의 필요와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마음껏 놀고 만나고 궁리해서 주장도 해보고 함께 일도 만들고 해보는, 말 그대로 눈치 보지 말고 맘껏 놀 수 있는 환경과 자원을 제공하는 것이 행정의 역할이 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을 행정이 직접 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된다면 그런 촉진자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기관을 설립, 지원하고 간섭하지 않기만 하면 되는 쉬운 방법이 있다. 주민자치는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새로운 주체가 발굴되고 성숙하고 확대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 제도적 설계에서 이를 위한 지원이 상당한 비중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주민자치력의 성장이 참여하는 주민들의 교육과 훈련이 기초가 되어야 하겠지만 그 방식도 학습동아리, 참여자 중심의 교육 등 그 자체가 자치적 방법이 되어야 한다. 자기주도적이고 실천경험과정에서 배우고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 방식의 학습과 더불어, 학습과 실천과정에서 맺어지는 인연들을 지역사회 네트워크로 엮어가고 지속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주민자치정책도 지역사회 네트워크 형성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하며, 사람을 만나고 함께 공부하고 모임을 운영하고 공동의 실천을 하는 등 그에 필요한 예산을 투자하는 데 보다 과감해야 한다.

 

5. 지방자치단체들의 선도적 실험에서 배울 점

 

지난 17여 년간의 주민자치센터 운영경험은 제도 자체의 근본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참여하고 노력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적지 않은 성과를 쌓아온 것도 사실이다. 주민자치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한국 현실에서 주민자치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이제는 주민자치제도의 정착이 당연한 과제로 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변화이다. 또 직능단체장들이 주민자치위원으로 위촉되면서 단체들 간의 협력관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앞서가는 지역에서는 주민자치위원회를 중심으로 읍동 단위에서의 네트워크가 정착되기 시작했다는 점도 중요한 변화이다. 또한 주민자치센터를 매개로 마을만들기활동이 확산되고 일반화되는데 기여했으며, 더 나아가 읍동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읍동 단위 마을의제만들기가 행해지고 이렇게 마련된 마을계획을 체계적으로 실천해가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2010년 민선5기 지방자치선거 이후 여러 지역에서 개혁적 성향의 단체장들이 의욕적인 정책을 펼치면서 주민참여를 위한 개혁정책들의 성과가 쌓이기 시작하였다. 주민참여예산제의 실시, 마을공동체 정책, 시민참여공론장의 조성 등 행정의 타성을 깨고 주민자치역량을 확대해가는 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주민자치는 대개 주민발안, 주민투표, 주민감사청구 등 직접민주주의적 맥락에서 주민참여와 권한을 제도화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었고 지방자치의 측면에서 볼 때도 단체자치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한 원론적 차원의 주민자치 원칙의 강조가 많았다. 그런데 대체로 20105기 민선 지방자치선거 이후에는 다른 양상의 주민자치 활성화 시도들이 새롭게 발견된다. 주민참여예산제가 2011년 이후 법률적으로 의무화된 것도 정책결정과정에의 주민참여를 제도화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앞서가는 몇 몇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민참여조례가 도입되어 적극적인 주민참여행정을 실현하려 노력하였고, 형식적이었던 각종 민간참여 위원회운영의 개선, 일부 정책입안과 집행과정에서 타운홀미팅방식이나 시민원탁토론방식의 의견수렴과 더 나아가 거버넌스형의 의사결정 방식들이 시도되고 공론조사나 시민배심원제 등의 실험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참여정부의 살고싶은 지역만들기 정책에 이어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마을만들기 내지는 마을공동체 사업이 크게 확산되었다. 마을만들기지원조례를 만든 지방자치단체만 해도 2010년에 안산, 수원, 광주북구와 광산구, 진안, 전북 등 손에 꼽을 만한 정도였지만 2017년에는 광역 14, 기초 130개 지역으로 대폭 늘어났고, 중간지원기관의 숫자도 광역 11개소, 기초 67개소로 대폭 확대되었다. 마을만들기사업이 확산되면서 중기적으로는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 도시관리계획, 지역사회복지계획 등에 마을만들기 방식이 적용된 주민참여형, 거버넌스형 사업추진방식들이 시도되고 있다. 또 이러한 개혁적인 지방자치단체간의 연대와 협력도 증가하고 있다. 2015년도에는 마을만들기지방정부협의회가 출범하였고 그에 앞서 사회적경제지방정부협의회도 만들어져 상호 정보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주민자치위원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주민참여와 주민자치를 활성화하기 위한 읍동 단위의 개혁정책들이 시도되고 있다. 시흥시가 대표적인데 인접한 행정동을 통합해 대동제를 도입하고 과단위의 행정기구를 설치해 일선현장의 공공서비스를 강화하는 한편 남는 동 청사 공간을 주민자치 및 지역공동체 거점공간으로 활용하게 하였다. 또 주민자치회 구성에 있어 해당 지역을 여러 개의 생활권역으로 구분하여 각 권역별로 주민대표를 선출하여 주민자치회 구성의 골간으로 하였다. 주민자치회는 지역대표위원, 직능대표위원, 주민참여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지역대표위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주민 30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하며, 자신의 권역을 대표하여 주민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의제를 발굴하는 일을 하게 된다. 직능대표위원은 문화예술, 지역경제, 안전생활, 지역복지 등 자신의 분야를 대표하고 전문성을 발휘하여 지역발전을 위한 사업발굴을 한다. 직능대표위원은 각 기관으로부터 추천받는 사람들로부터 선출 한다. 그리고 주민참여위원은 공개모집과 추천, 일정한 심사과정을 통해 선출된다.
시흥시는 평생학습도시로서 시민교육을 위한 지원체계를 갖추고 실천한 데로부터 출발하여 자원봉사활동, 마을만들기활동 등의 적극적 추진으로 주민들의 지역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실천역량들을 풍부하게 발전시키고 주민자치회의 전향적 모델을 도입 실험하는 등 주민자치를 위한 선도적 실천을 하고 있는 지역이다. 김윤식 시흥시장은 3선의 재임기간을 일관되고 꾸준하게 이러한 정책을 도입, 실천해왔으며, 자치조직권, 자주재정권과 같은 권한이 없는 명목만의 우리나라 지방자치 정치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주민자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해오고 있다. 김시장은 "중앙정부가 결정하고 지방정부는 집행만 하는 중앙집권적 개발정책은 지역갈등과 자원낭비를 초래하는 2할 자치의 폐단을 낳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지방자치가 제대로 실행되려면 자치와 분권을 담보할 수 있는 개헌을 해야 하고 개헌에 대한 대중의 공감대 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장해 왔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주민자치 정책실험이 서울시의 주민주도 주민자치 시범사업이다. 서울시에서는 그동안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정책을 추진하면서 2015년에 4개 자치구 14개동, 201613개 자치구 35개동, 20177개 자치구 6개동에서 마을계획단 사업을 실행하고 있다. 마을계획사업은 동()단위 마을계획의 실험과 주민 참여확대라는 소중한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주민주도 주민자치 시범사업은 마을계획단, 주민참여예산의 성과와 기능을 동 단위 주민자치의 틀 내에서 융합하려고 하고 있다. 마을계획과 동 참여예산은 사업 대상 범위가 동일하며 의제발굴 및 주민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유사하게 추진된다. 마을계획과 동 참여예산은 동() 주민자치의 주요 영역이며 주민자치의 틀 내에서 통합될 때 주민자치 영역이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기존에 운영되었던 주민자치위원회를 보다 발전된 형태인 주민자치회로 개편하여 실질적인 주민자치 권한과 역량을 높이기 위한 시도이다. 주민자치회는 자치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주민들이 참여하는 마을의제별 분과를 구성하며, 마을의제별 자치계획을 수립한다. 자치계획은 주민총회라는 주민공론장을 통해서 결정된다. 또한 주민자치회는 서울시 시민참여예산(동단위 계획형) 편성 권한, 행정사무 위수탁권한 등을 통해 자치계획을 실행할 수 있게 되는 등 실질적인 주민 자치 역량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서울시의 주민주도 주민자치 시범사업을 기존의 행자부 시범사업과 비교한 다음 비교표를 참고하면 그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내용

서울시 시범사업

행자부 시범사업

명칭

OO동 주민자치회

OO동 주민자치회

주민자치회 인원

50명 이내

OO 명 이내

자치위원 선정 방식 *

자치학교 사전 이수 후 추첨

선정위원회에서 선정

(선정 이후 교육 권장)

자치위원 구성 비율

40대 이하 15% 이상

특정 성 60% 미만

여성 비율 40% 이상

자치위원 위촉

구청장

구청장

자치위원 권한 *

행정사무 위수탁권

행정사무 협의권

자치계획 수립권

서울시 동 참여예산 제안권

행정사무 위수탁권

행정사무 협의권

주민총회 *

도입 (1회 실시)

없음

분과구성 *

도입 (자치위원 및 주민 참여)

도입 (주민자치위원만 참여)

지원체계 *

동자치지원관(촉진자) 상설 배치

구자치사업단(중간지원조직 설치)

없음

사무공간 지원

사무공간 조성비 지원

없음

서울시의 매뉴얼에 따르면 주민자치회의 주민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서 자치위원을 추첨을 통해서 선정한다. 자치위원이 되고자 하는 주민은 주민자치학교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최소 6시간의 교육을 이수하면 자치위원으로 선정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공개적인 절차에 따라서 각 동의 주민자치회 위원을 연령과 성별 비율에 맞춰 추첨으로 선정하게 된다. 주민자치회 분과는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방향을 택하였다. 분과는 해당 분과 영역의 자치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단위이다. 자치위원과 주민들로 구성된 분과에서 수립된 자치계획이 주민 1%가 참여하는 주민총회에서 최종 의결된다. 주민총회는 주민 공론장으로 주민자치회 활동과 사업에 공공성을 부여하는 장치가 된다.

동단위로 배치된 동자치지원관은 주민자치회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자치위원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동자치지원관에게 슈퍼비전을 제공하면서 협력하는 구 단위의 자치사업단을 설치했다. 구자치사업단은 민간기관이 위탁받아 운영하며 동자치지원관은 구자치사업단에 소속된 민간 전문가이다. 또한, 동자치지원관은 주민자치회가 마을 단위의 민간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을 지원하며 구자치사업단은 주민자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행정과 협의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서울시 시범사업은 행정사무 위수탁 및 협의 권한에 덧붙여서 자치계획수립, 서울시 동참여예산편성제안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자치계획을 수립하여 주민총회에서 의결하도록 하는 권한을 주민자치회에 부여하고 참여예산과 연동함으로써 자치활동의 공공성과 실효성을 높이고자 했다. 전문가 동 배치 및 자치구 중간지원조직을 구성함으로써 주민 자치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체계를 만들었다는 점이 행자부의 모델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상의 서울시 주민주도 주민자치 시범사업에서 시도하고 있는 정책내용들은 앞 장에서 검토, 정리했던 주민자치 제도화 정책방향의 상당부분을 반영하고 있고 실제 실행되고 있는 정책이므로 앞으로의 시행결과가 많이 기대된다. 하지만 결국 그 성과정도는 실천주체들의 준비정도와 실천의지에 많이 좌우될 것이다. 또한 내년 지방선거를 전후한 개헌 국면에서 주민자치를 담보할 수 있는 자치분권개헌의 내용을 얼마만큼 공론화시키고 담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주민자치제도화의 환경여건을 얼마만큼 전진시킬 수 있느냐 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덧붙여 보완하고 싶고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앞 장의 주민자치 제도화의 정책방향이나 서울시의 주민주도 주민자치 시범사업의 정책내용에서 미쳐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지만 주민자치의 본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민하고 검토해봐야 할, 그리고 원리상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실현을 위한 현실적 검토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주민자치회의 구성과정과 사회적, 법적 인정과정에서의 자치성을 잉태시키는 문제이다.

 

6. 주민자치회 만드는 과정이 관건이다.

 

주민자치의 유전자(DNA)는 어디서 오는가? 주민자치회의 탄생과정, 건설과정 자체가 얼마만큼 자치적이냐 하는 것이 주민자치의 성과와 운명을 좌우하는 데 결정적이다. 그래서 탄생과정 자체에서 자치DNA를 잉태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자치가 자기생명력과 복제능력을 갖고 확산될 수 있으며 상처를 받아도 복원력을 갖고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

형식과 내용의 통일, 제도화와 역량의 축적이 통일되는 것이 좋다. 제도를 만드는 과정자체가 역량을 모으고 끌어올리고 발전시키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주민자치회를 위에서부터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주민이 관심을 갖고 참여해서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자치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추첨제 민주주의 방식의 결합, 곧 선거에 의하지 않고도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적 참여방식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물론 선거 방식을 통해 대표를 뽑아 주민자치회를 구성할 수도 있고 주민총회나 주민투표, 지방자치선거 시 관련 공약 - 주민자치회 구성방법에 대한 위임 등 - 을 내건 자치단체장이나 의원을 당선시켜 그 위임에 따라 선정위원회 같은 것을 구성해서 위원을 위촉하는 방법도 선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을 쓰던 공히 주권자인 주민들 스스로가 주민자치회 구성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 곧 주민자치회의 주인으로 대우하고 그에 합당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초기에는 읍면동 단위로 한 개의 주민자치회를 조직할 수도 있겠지만 가급적이면 아파트단지나 통(도시지역), (농촌지역)별로 주민자치회가 조직되어 복수의 주민자치회가 만들어지고 여러 주민자치회들이 협의회를 만들어 행정(상급지방자치단체)과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읍면동 단위도 사실 주민들의 직접 참여방식에 의한 주민총회와 같은 자치가 진행되기에는 지리적 범위가 크므로 읍동 단위를 포괄하는 주민자치회를 구성할 때는 일종의 근린의회와 같은 대의적 주민대표기구를 두는 것이 현실에 부합하며, 이 경우 구성방식은 아파트, , 리 등 지역적 근거를 갖고 선출되거나 대표 위임된 사람들, 해당지역을 근거로 활동하는 자발적 결사체를 대표하는 사람들, 해당지역 주민자치 발전에 필요한 전문적 식견을 가진 지원활동가 약간 명 등을 포함하여 구성될 수 있도록 한다. 또 다른 방법은 해당 지역 주민구성의 비례대표추출법을 적용한 추첨방식에 의한 구성이며 이 경우 자발적 참여의사를 밝히고 소정의 주민자치 학습과정과 실천경험을 갖춘 사람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집행부는 주민직선에 의해 따로 선출하는 것 보다는 주민대표기구 구성원 안에서 몇 명의 집행위원을 선거하여 운영위원회를 구성케 하고, 그들이 역할 분담하여 읍동의 운영과 사업을 책임지게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위원장이 읍동을 대표하게 한다(기관통합형). 이 경우에도 현실적으로는 운영위원회에 덧붙여 따로 읍동 사무장과 직원 제도를 두고 공무원출신 등 전문경영인을 채용하여 읍동 사무를 전문적으로 보도록 하는 것이 많은 경우 현실에 부합할 것이다(전문경영인제도).

그런데 제도는 내용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주민자치회의 인적 구성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을만들기 등 지역공동체활동그룹과 주민자치위원 등 기존의 지역사회리더그룹들 모두가 잘 담길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그냥 형식적, 기계적 결합이 아니라 마치 세례를 받는 것과 같은 계승과 혁신을 위한, 신구(新舊)의 조화를 위한 어떤 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민자치회를 만드는 과정은 지역의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주민운동이나 마을의제만들기와 같은 지역비젼을 만드는 과정과 결합되어 진행되는 것이 좋다. 그 과정에서 주민의 참여와 대표성, 숙의성이 형성되고 성숙하게 되며 그 과정에 대한 지원과 합의결과에 대한 수용약속이 상급자치단체 차원에서 사전에 담보된다면 속도를 높이고 공식성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힘이 된다.

주민들의 참여와 힘으로 구성된 주민자치회는 위와 같은 과정의 내용을 담은 자체의 자치헌장이나 규약 등을 합의해서 만들고 이를 내외에 선언하도록 해야 하며, 이를 근거로 상급 자치단체(지방정부) 등과 협약을 통해 상호관계(권한과 역할의 상호 약속, 지원과 책임의 내용 등)를 규정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이 과정이 중요한 것은 주민자치회의 탄생과정이 사회적, 법적으로 공신력을 얻는 것, 그리고 그것이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과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대등한 관계에서 기성의 권력체(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와 관계를 새로 맺는 역사를 갖는 것이 주민자치의 유전자(DNA)의 성질을 규정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새로 제정될 주민자치회법에는 이러한 주민자치회 구성과정의 자치성에 대한 담보, 주민자치회 구성의 대표성과 권한부여가 확실하게 담겨야 한다. 해당지역의 대표성, 주민의 자발성을 기본으로 전문성이 결합될 수 있는 구성방식이 되어야 한다. 주민자치회의 기능은 주민대표기능, 지역공동체형성기능, 행정지원협력기능, 자기수익사업기능 등을 포함해야 한다. 주민자치회법에는 기본방향과 원칙을 확인하는 포괄적 규정을 두고 각 지역실정에 맞게 자율적이고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두어야 한다. 한마디로 규격화해서 찍어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자체 조세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당연히 국민의 세금으로 기본운영과 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산이 지원되어야 하고 지원된 예산을 자기책임 하에 배분집행 할 수 있는 포괄적 예산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주민자치역량을 지속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학습프로그램이 제공되고 투자되어야 하며 행정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중간지원조직과 지원인력들이 배치되고 이를 예산으로 지원해야 한다. 또 현실에 맞는 정책의 입안을 위해 현재 자치위원의 경력, 자치위원 경험 비율, 시민모임, 아파트자치회, 통반장, 부녀회, 청년회, 자생단체, 직능단체 등 주민자치 관련 조직실태의 세밀한 조사가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행정혁신의 관점에서도 주민자치회를 바라보는 기본 방향이 재검토되어야 한다. 동 단위의 주민자치회는 준자치단체로 이해해야 하며, 주민생활과 밀접한 읍면동의 인력, 예산, 권한을 확대하여 주민수요에 부응하는 방향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행정효율화 개혁은 필요하지만 그것은 상급단위의 관리적, 경직적(관료적) 인원과 기구, 예산 축소가 기본이 되어야 하며 생활현장에서의 행정서비스는 오히려 확대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다만 다양화, 복잡화되고 있는 공공서비스수요에 부응하여 그 방식이 공급자 중심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의 자치적이며 유연한 방식, 지역공동체거버넌스의 원리에 의한 대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7. 맺음말

물론 앞에서 말한 주민자치 제도화의 과정과 원칙들을 개헌국면에서 확인하고 법률에 담아내는 작업을 선행해야만 그것이 담보가 되어 주민자치회 건설과정이 순조롭고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그 과정을 서구처럼 수많은 세월을 거치며 싸워가면서 시행착오를 해가면서 굳이 반복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근대화도 그렇고 민주화도 그렇고 후발주자로서의 잇점을 살려 성공적으로 했는데, 이제 주민자치의 길, 공동체로의 길, 인간화로의 길도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주민자치화 과정도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는 매우 빠른 속도로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정착시킨 경우이기도 하지만 유혈을 동반한 급격한 혁명과 반혁명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극단적 방식이 아니라 과거의 세력과 미래의 세력이 공존하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질서있게 민주화를 진전시켜 온 모범적인 사례이다. 876월항쟁이후 집권세력의 변화과정을 다시한번 되돌아보면서 선거를 통한 군부세력의 재집권 -> 군부와 타협했던 야당정치세력의 집권 -> 선명야당정치세력의 일부 보수적 정치세력과의 연합에 의한 집권 -> 민주화운동 세대의 집권 -> 보수적 정치세력의 재집권 -> 민주화운동세대의 재집권으로 흐르는 일련의 과정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횃불이 아닌 촛불을 들어야 할 시대이다. 촛불은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힌다. 촛불이 흘리는 눈물도 함께 생각한다. 혼자 앞장서서 나가니 내 뒤를 따라라가 아니라 마음을 담아 작은 불을 밝히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면서 이웃들과 동료들과 함께 여러 촛불이 모여 주변을 밝히고 무리를 이루어 서서히 나아간다. 때로는 촛불이 광장에 모여 세상의 큰 물줄기를 바꾸기도 하지만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내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 나 자신을, 내 이웃을, 우리 마을을 날로 새롭게 하는 생활 속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한다.

풀뿌리의 촛불행진, 주민자치를 향해 신발끈을 고쳐 매며, 마하트마 간디의 스와라지(swaraj, 자치)’를 다시 생각해 본다. 20세기의 성자라 불리는 간디는 일찍이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라고 했다. 간디는 마을 스와라지에 대해 말하면서 스와라지가 외부의 억제와 간섭으로부터의 탈피, 배제와 단절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성찰, 자립과 자치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지역공동체 안에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공동체시민으로서의 책임감, 자기통제의 기술과 자치의 원리를 의미한다. 간디는 총을 들고 제국주의에 맞서는 길 대신 비폭력시민불복종운동을 조직하였고 영국이 독점한 소금을 사먹는 대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바다에서 소금을 채취하기 위한 380킬로미터의 소금행진을 이끌었다. 몸소 자기 손으로 물레를 돌려 의복을 만들어 입음으로써 근대가 가져온 인간소외, 관료화와 억압, 탐욕과 물신숭배를 넘어 자립과 마을자치에 대한 대안적 길이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주민자치는 자기 스스로가 주인임을 깨닫고 이웃과 함께 손잡고 마을과 지역사회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새 문명 건설의 든든한 토대이다. 한국사회가 피땀으로 지키고 키워온 근대화와 민주화의 전통을 자산으로 인간화, 공동체사회로 나아가는 첩경과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제 위대한 풀뿌리의 촛불행진을 시작하자! 전국 방방곡곡 동네와 마을마다 주민자치의 물레를 돌리자!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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