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헌장 심포지움 토론문(박홍순)
시민주체 숙의민주주의로서의 인권헌장제정과정
내가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과정에 시민위원회 전문위원 자격으로 초대받은 것은 아마도 마을만들기를 비롯한 풀뿌리시민운동의 오랜 경험 속에 담긴 어떤 '전문성'이 도움이 되기를 바랬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마을만들기의 핵심은 시민참여의 과정에 있다. 마을만들기는 놀이터, 소공원, 골목길 등 생활환경 주변의 공용공간이나 공공시설의 설치나 유지관리와 관련하여 기존의 발상을 전환한 데서 시작되었다. 단순히 하드웨어적인, 시설의 디자인에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마을의 제 집단을 참여시키는, 즉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
서울시에서 기존의 인권기본조례나 인권선언, 인권관련 법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러 헌장제정 시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만들려고 했던 의의를 찾는다면 인권헌장에 새롭게 담을 내용도 내용이지만 오히려 헌장제정의 주체와 과정이 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서울시의 인권헌장제정 시민위원회는 기존의 방식대로 그냥 의례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었다. 서울시는 적극적 홍보를 통해 시민들로부터 시민위원 신청을 받았다. 150명 정원에 무려 1570명이 지원했다. 여론조사할 때 많이 쓰는 비례할당추출법을 응용하여 이 중 성비와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하여 추첨으로 일반위원을 뽑고 여기에 각계 전문가 30여명을 전문위원으로 위촉하여 시민위원회를 구성했다. 운영기간이나 방식도 달랐다. 5개월여에 걸쳐 총 6회의 전체회의가 진행되었고 별도의 분과회의나 전문위원회의, 분야별토론회, 지역별토론회, 준비실무회의까지 합치면 50여회가 훌쩍 넘어설 것이다. 전체회의의 운영방식도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활용하여 철저히 참여자 중심으로 운영하였다. 시민들은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면서, 조율된 의견을 포스트잇에 적었다. 전체토론과 분과별 심화토론을 반복하며 합의수준은 점점 높아졌다. 열성적인 시민위원들의 요구에 예정에도 없던 인권교육이 두 차례나 실시됐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민위원들은 최종안을 만들어갔다. 다음의 "그라운드룰"은 모두가 합의하고 전체회의 전 과정에서 지켜졌던 토론규칙인데 이를 보면 그 과정의 진지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 모든 의견은 동등하게 중요하다.
2. 상대의 발언을 경청한다.
3. 회의에 적극 참여한다.
4. 회의 목적에 집중하되 소수의 의견을 존중한다.
5. 중요한 내용은 먼저, 보충설명은 나중에 한다.
6. 발언 횟수, 시간 등을 고르게 나눈다.
7. 메모한다. 메모한 뒤 발언하면 일목요연하게 말할 수 있고 시간도 줄어든다. 게다가 기록도 남길 수 있다.
8. 반 인권적 언행을 하지 않는다.
9. 인권감수성을 갖고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진다.
이번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과정은 일종의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식 시민참여 모델이다. 숙의 민주주의에서는 단지 투표나 여론조사처럼 일회적인 선호도의 확인이나 '찬, 반'을 묻는 방식이 아니라,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상호토론의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시민의 의사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숙의의 방식은 입법부의 의사결정이나 사법부의 판결과정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문가들에 의한 엘리트 숙의방식이다. 간접적인 권한위임에 의한 대의민주제 방식은 의사결정과정에서 주권자들의 소외를 낳게 되고 결정의 정당성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반면 대중적인 숙의 민주주의 방식은 직접민주제적 장점이 결합되면서도 일시적 여론이나 왜곡된 정보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숙의성을 확보할 수 있게 만든다. 그동안 시민배심원제, 참여예산제, 공론조사, 타운홀미팅 등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종합적 내용을 일관되게 진행한 경우는 흔치 않다. 대중적 숙의 민주주의의 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사적 개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의지'를 구성해가는 주체로 성장하게 되고 그만큼 시민사회는 풍부하게 성숙해 간다. 공청회장이나 토론장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일방적 주장과 상대방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토론모임이 거듭되면서 옆자리의 토론동료들과 얼굴을 붉히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설득해나가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익명성의 가면 뒤로 숨을 수 없게 하는 면대면 민주주의의 학습장으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매우 번거롭고 공이 많이 들게 된다. 결과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존의 행정방식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축적되어온 시민사회의 역량과 서울시의 전문적인 행정지원이 결합하면서 이 쉽지 않은 일이 현실로 구현되고 있었다. 서울시 관계공무원들의 지원은 매우 헌신적이었다. 그들은 정말 진심을 다해 이 어려운 회의의 사무국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그렇게 열심이던 행정의 태도가 소극적으로 변하면서 약간씩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4차 회의 경 부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동성애 혐오세력들이 인권헌장의 제정을 막기 위해 행동을 적극화하기 시작한 싯점이다. 당시 인터넷게시판, 권역별 토론회, 공청회와 같은 직접참여의 외양을 띈 형식적 행사들이 개최되었는데 이같은 방식들은 숙의민주주의 정신을 살린 인권헌장제정 시민위원회의 본 프로세스와는 무관하게 진행된 관성적인 시민참여의 절차들이었고 이 틈을 소수의 조직된 세력들이 선동의 장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전체의 판을 흔드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서울시민 인권헌장제정의 무산을 초래한 외부로부터 첫번째 위기였다면 외부로부터의 두번째 위기는 어이없게도 박원순 서울시정부 그자체로부터 나왔다. 날로 거세져가는 동성애 협오세력들의 조직적 움직임은 점차 박원순시장에 대한 정치적 공격으로 옮겨갔고 서울시는 속수무책 별다른 대응의 정치력을 발휘하지도 못한 채 결국 밖으로 향해야 할 스피커를 안으로 돌려 시민위원회에게 "합의가 아니면 헌장은 없다"라고 하며 책임전가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보를 보여줬다. 시민의 힘으로 만들고 시정부가 적극적인 실천을 담보하는 거버넌스의 '동반자'로 초대받았던 시민위원들은 어느날 갑자기 사회적 갈등의 한쪽 당사자로 전락하면서 용도폐기되었다.
첫 번째 위기를 가져온 세력들이 공격한 포인트 중 하나는 시민위원회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회의 한쪽 진영에 속한 몇몇 인권운동가들이 전문성이라는 포장을 쓰고 시민위원회를 좌지우지하고 있고 오히려 인터넷, 집회시위, 공청회와 같은 시민의 직접참여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는 자신들의 목소리가 시민들을 대표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으며 마치 시계를 2,30년 전으로 돌려 권위주의적 독재체제 하에서의 직접참여 민주주의를 주장하던 모습을 전혀 조건이 다른 오늘날 재현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사실 그들의 모습은 개방된 직접참여의 공간을 독점하며 과잉대표성을 시위하는 비민주적 행태에 다름아닌 것이다. 사실 지금 우리는 일반민주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정한 추첨의 방식이 선출된 대의제적 위임보다도 오히려 더 민의를 잘 대표할 수 있으며 여기에 숙의의 과정이 잘 조직될 수 있다면 사회적 신뢰와 정당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절차의 정당성은 단순히 정형화된 어떤 형식의 준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주체들 상호간의 인정, 신뢰의 형성을 본질내용으로 하고 있다.
두 번째 위기를 가져온 서울시가 내세우고 있는 ‘합의’가 의미하는 이면의 본질은 무엇일까? 진정 합의가 가능하다고 믿었고 그를 위한 현실적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있었을까? 아니면 정치적 반대파로부터의 공격의 예봉을 피하고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핑계가 필요한 것이었을까? 과정을 함께 하지도 않으려 하고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과실만을 가져가려 한다면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숙의민주주의의 원리에 의해 운영된 시민위원회는 야당과 여당을 나누어 대리전 양상의 세 대결을 펼치는 통상적인 의회의 모습과는 달랐다. 때문에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세력 간의 주고받는 협상에 의한 합의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편, 네 편으로 나누고 진영논리를 통해 세상을 재단하고 행동하는 낡은 정치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새로운 거버넌스의 실현은 먼 훗날의 과제로 달아나고 말 것이다.
비록 결실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서울시민 인권헌장제정 시민위원회의 모습은 '보통사람들의 위대함'을 보여주었고 만인주체 신뢰사회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주인인 시대이다, 풀뿌리운동은 특정한 엘리트들이 벌이는 운동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 사람들, 일반 시민들이 주체가 돼서 벌이는 운동이다. 풀뿌리가 갖는 생명력과 복원력은 매우 질기고 쉽게 멈추지 않는다. 숙의민주주의 과정과 거버넌스 정신을 연습하고 확산하려는 풀뿌리의 노력은 그것이 우리 사회에 차고 넘쳐 바람처럼 물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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