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삶은 새로운가?
미래사회와종교성연구토론회 발제문
1)위기의 시대와 해법
세간에서는 지금시대를 위기의 시대라고 칭하기도 한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위기로 크게 3가지를 드는데 경제위기, 자원위기, 환경위기가 그것이다. 경제위기는 장기불황과 양극화현상의 심화와 고착화이다. 환경위기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관련된 위기이며 자원위기는 에너지자원과 식량자원의 위기인데 이것들은 환경위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위기들은 기존의 관성적 사고를 넘어선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한 위기이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를 통해 더욱 피부적으로 느끼게 된 경제위기는 대 침체를 넘어서 이제 장기침체로 전환되고 있는데 일시적 현상이 아닌 근본적 문제라는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세계화의 확대는 지역 불균형의 심화를 낳고 있다. 금융 세계화는 고도의 기업활동과 정보통신시설이 집중된 이른바 세계도시(예, 서울)를 필요로 하고, 세계도시는 세계경제의 지역적 네트워크로 편재된다. 세계경제의 지역적 네트워크에 포함된 일부 지역은 성장하지만, 그 외의 대다수의 지역은 배제된다. 그 결과 중소기업과 농촌경제의 쇠퇴를 고착시키고 대형유통자본에 의한 자영업자의 몰락을 가져온다, 삶의 공간으로서의 지역은 위협받는다. 주거, 보육, 교육, 보건의료, 환경, 문화 등에서 공공성은 후퇴하고 사회서비스는 민영화와 시장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인류가 직면한 이러한 위기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근대화 과정에서 배태되어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이러한 위기들은 크게 물질중심의 발전전략과 개인을 위주로 한 무한경쟁 시스템에 기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적 이윤추구와 자유경쟁의 폐해를 국가가 주도하는 공공성의 강제와 복지국가의 보완성으로 풀어보려한 시도들도 한계에 부딪혔다. 시장의 원리로 실패하고 국가의 원리로도 실패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것을 찾는 길은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자치와 협동의 원리에있다. 물질을 중심으로 한 발전이 아니라 생명을 갖고 삶을 영위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는 관점을 세워야 하며 그것이 바로 자율적 시민공동체에서 사람들이 어울려 건강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성찰성이 증대하면서 국가나 시장과 같은 전통적 부문이 아닌 시민사회와 같은 자발적 부문의 사회적 역할과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사람들의 지식문화수준, 기술발전과 생산력의 증대, 민주주의의 발전 등 사회의 전반적인 자율화 과정이 높아지고 있다. 시민사회는 국가나 시장이 갖지 못한 새로운 인적, 물적, 정신적 자원을 갖춰나가고 있다. 바로 자발적 부문이라는 특성에서 나오는 힘이다.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자발성에 근거한 공익성의 추구, 이것이 국가실패, 시장실패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열쇠이다.
세계의 발전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앞서 얘기한 3대위기의 심화가 한 측면이라면 다른 측면에서는 그를 극복할 수 있는 객관조건의 성숙을 예비해왔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은 이미 지식정보화, 세계화, 민주화 등으로 과거로부터 고정되어있던 장벽의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개인들의 자유, 시간, 부, 건강, 사회적 이동성, 자신감 등이 증가하면서 시민섹터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과거 소유와 지배, 착취와 소비가 지배하던 시대에서 창조와 생산, 봉사와 절제라는 새로운 가치가 보람과 기쁨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고 있다.
정부의 간섭, 자본과 교육에의 부족한 접근, 높은 커뮤니케이션 비용 등 이전까지 작동했던 많은 장벽이 제거되면서 시민섹터가 활성화되고 사회와 경제로 나뉘던 개념적인 장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정부와 시장은 시민섹터를 키우고 그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하며 시민섹터는 시장으로부터 배우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경계를 넘어 창조적 협력으로 나아가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좋은 투자이다.
2)시민사회와 마을만들기
시민사회의 두 가지 축은 권익과 책무의 측면에서 형성되는데, 한국도 사회발전에 따라 권익주창(Advocacy)에서 자원봉사(Volunteering)로 점차 기능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특히 지역사회를 무대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풀뿌리 시민생활영역에서의 마을만들기, 주민자치 등 풀뿌리공동체운동이 대표적인 활동양식으로 떠올랐다. 그것은 지속가능한 생활환경실현운동, 주민참여형 지역복지운동, 자원봉사와 시민교육을 통한 공동체의식 확산운동, 주민자치를 통한 지역공동체 형성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풀뿌리공동체운동에 있어 주민참여의 궁극적 목적은 참다운 공동체 형성에 있다. 사람들은 풀뿌리지역사회의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참여하여 그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자기존중만이 아니라 타인존중을 배우게 되고 공동체의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체득하게 되며 자기통제의 기술과 자치의 원리들을 배우게 된다.
담장허물기로 상징되었던 마을만들기운동이 지역의 물리적 환경을 바꾸어나가는 초기적 모습을 넘어서서 이제는 주민들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영역에서 마을주민들이 협력하여 마을을 꾸리고 관리하는 노력, 즉 생활자치를 통한 지역공동체만들기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들은 운동소재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운동들과 결합되는데, 공동육아, 대안학교, 대안미디어, 생협, 아파트공동체, 자활, 농어촌활력사업, 지역문화, 지역복지, 생활환경, 학습공동체, 평생학습, 자원봉사 등이 그것이다. 서울마포의 성미산공동체, 풀무학교로 유명한 충남홍성의 홍동마을, 전북 진안군의 으뜸마을가꾸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제도화된 행정영역과의 협력을 통해 지역공동체만들기운동을 확산시켜 왔는데, 90년대부터 진행되어 온 지방의제21운동의 성과를 이어 마을단위의 마을의제운동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며 읍면동단위에 주민자치센터가 설치되면서는 주민자치센터를 통한 지역공동체활성화운동이 양적인 면에서나 관심도 면에서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들은 특정사안에 대한 요구형 운동이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적 생활과 관련된 지역사회의 여러 가지 과제들을 해당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해결하고 만들어가는 조성형(助成形)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민관협력을 통한 사회창안운동이나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회적 기업과 같이 정부·시장·시민사회 상호간 경계를 넘어선 창조적 협력으로 새로운 유형의 사업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는 흐름이 주목받고 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마을만들기운동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점차 다양화되고 풍부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초기의 물리적 환경을 대상으로 마을만들기를 했던 관성을 넘어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에 있어 소득 창출이 중요해지면서 마을 기업(커뮤니티 비즈니스)이라는 영역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마을 기업은 도시지역보다는 지역주민 전반의 빈곤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는 농촌지역에서 더욱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예술가들과 지역주민들이 결합하는 공공디자인의 형태를 띤 마을만들기도 활발해진다. 또 민간 차원의 마을만들기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마을만들기 주체들 간에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움직임이 커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2007년부터는 ‘마을만들기 전국대회’가 개최되었고, 마을만들기 운동의 확산과 활동성과 공유 등의 목적으로 2007년 1회 대회부터 4회 대회까지는 농촌지역 마을만들기의 대표적 주자인 진안군에서 개최되었고, 잠시 휴지기를 가진 뒤 2012년에는 도시지역인 창원에서 제 5회 대회가 개최되었다.
마을만들기 운동과 관련한 보다 체계적인 지원기구인 중간지원조직들인 ‘마을만들기 지원센터’가 몇몇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기 시작한 것도 마을만들기의 체계적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행정과 주민의 중간에서 마을만들기를 지원하는 마을만들기 지원센터의 설립과 활동을 통해 마을만들기도 단순한 재정 지원을 통한 사업유도를 넘어서는 보다 종합적인 지원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2008년 경기도 안산시에서 최초로 민간전문성을 갖춘 마을만들기 지원센터가 설치된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말 현재 전국 17개 자치단체에서 18개의 마을만들기 지원센터를 설립했거나 설립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 지원센터들은 공모사업 대행과 지속적인 컨설팅, 교육, 개별 사업 지원을 넘어선 마을 만드는 과정 전반에 대한 지속적 지원, 주민 리더들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과 지원 및 역량강화 관련 사업, 외부 전문가 등의 네트워크 형성 등 지원, 정보의 허브 역할, 마을만들기 추진 지역들 간의 연계 및 네트워크 구축, 행정과의 협력 등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지원의 역할로 발전하고 있다.
3)마을공동체만들기는 대안인가?
그런데 최근 서울시에서 마을공동체만들기를 주요한 시정목표로 제시되고 지원정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도시에서의 공동체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마을공동체가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 방법론으로 또 현실적 정책수단으로 부각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특히 뉴타운 출구전략과 연관지어 마을공동체가 거론되면서 복잡한 현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도시개발문제와 이상적 방향을 추구하는 마을공동체운동의 매개없는 직접적 결합은 많은 문제를 낳을 소지가 있다.
서울시에서는 뉴타운, 재개발 정비사업으로 인한 주민 간 갈등을 해소하고 주민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주민들이 실태조사결과(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실태조사관 지원)를 확인하고 주민 스스로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관건이 될 문제는 매몰비용과 추정분담금의 부담을 누가 얼마만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또 해제 이후에도 대안사업을 어떤 방법과 동력으로 벌여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대안사업으로 제시되고 있는 주거환경관리사업은 단독주택, 다세대주택 밀집지역에서 정비기반시설과 공동이용시설 확충을 통해 주거환경을 보전, 정비, 개량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물리적 환경개선뿐 아니라 주민중심의 공동체활성화와 사회경제적 종합적 재생을 중시하고 있다.
도시재개발사업과 관련하여 바람직한 도시재생의 방법은 무엇일까하는 문제는 도시발전이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성숙이 요청되는 단계로 넘어오면서 그 수요가 계속 커졌왔고, 환경변화에 따른 새로운 대처방식에 대한 필요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 객관적 상황이다. 바람직한 도시재생의 방법과 관련하여 마을만들기가 중요시되고 있는 것은 저층주거지역에서 대규모 개발에 따른 공동체의 와해를 방지하고 원주민의 정착율을 높이기 위해 지역주민들의 참여과정이 필요하다는 점과 주민들의 낮은 정주의식을 개선하고 지역공동체에 대한 애착을 심어나가기 위해서는 해당지역이 갖고 있는 역사문화적 개성을 발굴하고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가는 마을만들기방식이 적합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도시재개발 사업에서 정비구역 지정과 해제는 관계자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폭발성이 높은 행정행위이다. 때문에 장기적인 도시계획 차원에서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와 갈등조정을 잘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재산권과 주거권의 행사와 같은 개인의 권리와 관련된 문제와 공동체의 공공성 실현이라는 문제를 대립적 관점에서 보고 어는 한쪽의 선택으로 정책수단을 가져간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의 자유와 선택을 잘 보장하고 구성원 스스로가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합리적인 과정을 잘 설치하고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주민자치의 과정은 추상적인 게 아니고 바로 이러한 이해관계의 조정과 관련되어 있다.
4)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 고전에서 배우는 지혜
도시재생 정책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개인의 이해와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는 현대사회가 당면한 위기들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철학적 근본문제이다. 개인의 이해실현은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자각과 사회적 인정이라는 근대사회가 이룩한 성과를 보장하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실현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책무로부터 시작되며 공동체를 통한 사회적 가치실현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한 단계 더 풍부하게 성숙시킬 수 있는 통로이다.
2천년 전에 쓰여진 동양의 고전 논어에서도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관계에 대해 언뜻 상식적인 것 같으면서도 깊은 통찰을 하고 있다.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放於利而行 多怨 ; 논어 이인편 12장)”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움직일 수 없는 본성인 것일까? 인간도 생명체 일반이 갖는 자기중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선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자기중심성을 갖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룰 때, 이익끼리 충돌하면 결코 행복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 공자는 이 문제에 있어 아주 실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원망을 받게 되면 결국 자신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다른 사람의 원망 속에서는 진정한 자유나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이익에 따른 행동의 불이익을 지적함으로서 이익을 넘어서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근대사회에 있어 사회적 가치실현에 대한 인식은 제한적이었다. 물리적 환경으로부터의 제약과 신분적 제약 및 강요된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 근대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야말로 기본적인 가치였고 ‘평등’이란 본질적으로 자유의지를 갖는 개인들 간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좌, 우파 간의 대립과 갈등은 결국 자유의 측면과 평등의 측면 어디에 보다 방점을 둘 것이냐 하는 것을 둘러싼 것이었고, 현실정치에서의 실제적 정책경쟁은 그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개입정도에 대한 차이가 주요한 쟁점이 된 것이다.
현실정치의 의제는 국민의 자유와 행복에 관한 것이었는데 자유는 주로 권리보장의 형태로, 행복은 경제성장의 결과로 외화되고 평가받았다. 경제성장은 빈부격차의 심화를 낳고 빈부격차는 공동체의 불안정을 심화시킨다. 빈부격차가 지나치면 민주시민에게 요구되는 연대의식이 약화된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공공영역의 축소와 질 저하를 가져온다. 시민들 공공생활영역에서 부자와 빈자 간의 분리현상이 나타나고 사적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대신 공공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낮아진다. 분배정의의 실현은 공동체의 안정성 유지와도 깊은 연관성을 갖는 것이다.
좌우파 정책선택의 문제가 보다 직접적인 정치적 기능과 관련되어 있는 반면에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는 사회문화적 기능과 관련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가치실현과 관련된 현실정책을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와 연관 지어 다룰 때는 정부정책의 측면보다는 시민사회의 역할 측면에서, 또는 최소한 정부, 시장과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공동협력의 측면에서 출구를 찾아보는 것이 보다 올바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정의가 상호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게 실현되는 길은 그것이 얼마만큼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 사회성과 같은 인간의 본질적 속성의 발현에 부합하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에 조화롭게 접근하는 길에 대해 일찍부터 동양 고전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화합하되 똑같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 논어 자로편 23장)이 그것이다. 아집에 바탕을 두고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소인배가 아닌 군자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공자가 언급한 말이다. 부동(不同)은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특성을 존중하여 상대를 자기중심적으로 나에게 맞추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부동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 다른 사람과 기꺼이 화합할 수 있다. 부동(不同)이 존재론이라면 화(和)는 관계론이라고 할 수 있다.
소인의 동이불화(同而不和)가 사회적으로 나타나면 악평등(惡平等)을 강요하는 획일적 평등사회가 된다. 불평등은 해소해야 하지만 악평등에 빠지지 않아야 진정한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데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불평등이라면, 다른데 같게 하려는 것이 악평등이다. 이 두 가지에서 각각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평등사회가 구현될 수 있다.
화이부동하는 삶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서(恕)다. 서는 자기와 다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한다. 공자가 자신의 도(道)는 일이관지(一以貫之)하고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은 충(忠)과 서(恕)를 일컬음이었다(논어 이인편 15장). 충은 온 마음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진정한 충은 장난감 조립을 좋아하는 아이가 밥먹는 것조차 잊고 그것에 몰입해 있는 상태와 같이 편안함 속에 집중하는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현대사회(자유시장경제)에서 사람의 능력은 경쟁을 통해서 가장 잘 발휘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한한 긴장을 낳는 부작용이 있다. 무한경쟁은 낙오와 불평등을 낳는다. 경쟁을 넘어 경쟁을 대체할 수 있는 가치로 충(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충은 공정한 경쟁을 목표로 하는 상태를 넘어선 그 이후의 사회를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가게 할 수 있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전라도 장수에서 마을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남곡선생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이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경우에 어떤 사람이 설거지를 하면서 왜 저 사람들은 나처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현재 상태를 즐길 수 없다. 그러나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恕) 혼자 설거지하는 상황을 불편해하지 않고, 설거지에만 집중(忠)할 수 있다면 그 행위를 즐길 수 있다. 서와 충은 이렇게 함께 가는 것이다.”
5)새로운 사회발전을 위한 지역의 힘
서로 다름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화합할 수 있으며 집착이 아닌 자유 속에서 집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공동체와 더불어 함께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다. 근대사회의 ‘일터’ 중심의 무한경쟁체제가 빚어낸 한계를 넘어서서 참된 인간성의 구현을 준비할 수 있는 곳은 ‘삶터’로서의 지역공동체이다. 물론 여기서 지역공동체는 전근대적인 폐쇄성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국가시대를 넘어 전지구화시대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지역화가 의미하는 바로 그 지역공동체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시민활동의 성숙을 통해 점차 호혜와 자치, 협동을 배우고 키워나간다. 간디가 말했던 스와라지는 배제적인 지역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치적이고 포용적인 마을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의민주주의의 결손, 직접민주주의의 위험성,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시켜온 최상의 사회운영제도가 민주주의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갖는 허점도 인식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질(質)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그것을 운영하는 주체(主體), 곧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의 성숙정도이다. 질 높은 민주주의,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가는 훈련장은 지역공동체이다. 지역공동체에서의 자치활동은 다음의 세 가지 요소들을 훈련한다.
먼저 상호성(reciprocity)이다. 타인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욕구를 넘어서서 상호 수용가능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공공성(publicity)이다. 정책결정과정이 사익과 특정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어 공공선에 대해 숙의할 수 있도록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고 토론과 대화의 과정이 중시되어야 한다. 셋째는 책무성(accountability)이다. 민주주의는 권리의 행사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함께 해야 한다.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과 대표자들은 누구에게나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자치와 협동의 훈련장으로서의 지역공동체 활성화전략에 주목하게 되는 데는 지역에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역은 주체적 존재이다. 주민들이 공동체적 일체감을 갖고 상호연대해서 생활하는 공간이다. 지역은 자립적 존재이다. 지역은 인간이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행하고 서로 협동하여 살아가는 생활의 거점이다. 이러한 인간의 경제과정은 지역을 기본단위로 이루어진다. 지역은 대안적 존재이다. 신자유주의 글로벌 위기는 지역에서의 실천으로부터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근대화 과정의 경쟁위주의 외생적 개발전략이 가져온 폐해에 맞서 지속가능한 대안적 발전전략으로 제시되어 온 것이 지역의 내발적 발전전략이다. 내발적 발전전략은 다음의 3가지 원칙을 갖는다.
첫째, 지역개발의 목표가 단순한 경제적 성장이 아닌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 즉, 경제, 사회, 환경적으로 통합적 발전(integrated development).
둘째, 내발적 발전은 발전의 동력을 기본적으로 지역 내에서 구함(driven from within). 지역내의 자원(자연, 인적, 물적, 문화, 환경자원)의 최대활용에 의한 발전 추진, 발전 성과가 지역 내로 순환(보전), 귀속되도록 함.
셋째, 지역주도의 상향식 발전, 주민참여와 협동·자치에 의한 발전을 중시함. 다양한 주체와 파트너쉽과 네트워크에 의한 거버넌스 중시.
지금 세상은 사회제도, 물질, 의식이 서로를 상승시키는 진정한 조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익과 경쟁, 대립과 투쟁을 넘어서는 상생의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아직은 아집이 있는 서로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시스템과 물질적 준비를 통해 의식의 미흡함을 보완해가고 이런 실천의 과정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의식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며, 이러한 의식의 업그레이드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 이 글은 필자가 최근 몇 군데의 토론회에서 토론했던 내용들을 모아 재구성한 글이며 글 작성에 인용, 참고한 문헌들은 다음과 같다.
데이비드 본스타인(3008), “달라지는 세계”, 지식공작소.
마이클 샌델(2010),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이호(2012), “한국사회 마을만들기의 전개와 발전”,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
박진도(2011), “순환과 공생의 지역만들기”, 지역재단.
이남곡(2012),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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