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4일 월요일

중간지원조직, 로컬 거버넌스의 꽃인가?(2018.7.)

 * 이글은 도서출판 휴머니즘에서 발간한 "거버넌스형 지방정부 조직과 운영모색"에 게재된 글이다.

이 글은 거버넌스센터 지방의정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자치분권과 거버넌스 전략정책토론회(2017.6.8.)에서의 필자의 발제문 자치분권과 거버넌스 전략, 시민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의 내용과 국가거버넌스연구회 215차 세미나(2018.3.24.)“민선5,6기 지방정부 중간지원조직의 성찰에서 필자가 발제했던 내용을 재구성하여 쓰여진 글이다.




중간지원조직. 로컬거버넌스의 꽃인가?”

박홍순

()커뮤니티허브공감 대표

 

차 례

 

1. 지방정부 거버넌스 정책의 확산

2. 한국 거버넌스의 수준과 시민사회의 한계

1) 거버넌스 정책의 특징

2) 거버넌스의 수준

3) NGO의 특성

4) 시민사회의 한계

3. 중간지원기관의 확산과 드러나는 문제들

1) 중간지원조직의 역할

2) 한국적 변형 : 남귤북지(南橘北枳)

3) 중간지원기관 운영의 문제점들 : 의존과 간섭

4) 행정과 현장으로부터의 이중의 압박

5) 시민사회기반 강화 전략

6) 제도화의 양면성

7) 시민사회의 책임성과 다양성

4. 발상의 전환을 위한 모색

1) 자치분권시대와 행정주도형 혁신의 한계

2) 토론에서 얻은 지혜 : 이익 중시와 유연성

3) ()와 공()의 중간다리로서의 공()

5. 협치(協治), 그리고 정명(正名)의 길

 

 

1. 지방정부 거버넌스 정책의 확산

 

한국사회에서 거버넌스라는 용어가 시민사회의 사회변화전략의 하나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십 수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2003년 경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민관협력포럼은 연구자들이나 행정가들이 중심이 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시민운동과 연이 닿는 공직자들이 함께 모여 만들어진 것으로 정기적인 포럼을 갖고 학습하고 실천경험을 교류하는 모임이었다. 그 뿌리나 동기가 시민사회운동이 추구하는 사회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고민과 열정에 닿아 있었고 거버넌스의 실천적 확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흐름은 실천전략의 측면에서 거버넌스의 핵심을 파트너십으로 보았는데 그 이전의 시민운동과 확연히 다른 점은 공공영역, 즉 현존하는 정부를 극복의 대상이나 배제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공동의 미션을 이루기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할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같은 편(?) - 유사한 경험과 지향을 가진 사람들 - 이 정부운영에 참여하고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곧 내 편을 도와주기 위해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적 지향이나 정파에 속해 있느냐와 관계없이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계 그 자체가 공동의 미션을 공유하고 함께 수행해 나가야 하는 파트너 관계라는 인식과 실천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것은 분명 그 이전의 시민사회운동 전략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흐름이었다.

그런데 시민사회운동전략으로서의 접근이 구체화되기 이전에 한국사회에서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후반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학계, 그 중에서도 행정학 쪽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했고 처음에 도입했을 때는 정부 안의 국정관리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세계화가 급속하게 확산되는 후기산업사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의 국정운영에서도 이익의 다원화에 따른 행정수요의 다변화와 급증에 대해 앞으로는 기존의 관료시스템만으로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고 행정혁신의 필요성에 부응하여 거버넌스란 개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즉 기존 행정기능의 보완적 측면에서 정부는 거버넌스를 수용했고, 그 이후 국가통치의 시민사회 참여와 소통이라는 민주적 맥락이 덧붙여지고 강화되었다. 즉 정부운영에서 시민참여확대의 제도화와 열린정부의 지향, 의사결정과정에 다양한 시민사회 전문가들의 참여와 같은 양상을 띄고 확산된다. 그 이후 여러 차례 정부를 이루는 정치세력이 교체되면서 거버넌스에 대한 정부의 수용 태도와 중점과제는 해당정부 지지세력기반의 특성, 중시하는 국정 목표 등에 따라 부침을 달리 해왔다.

 

그 과정에서 거버넌스를 담론 차원이 아닌 실제 행정과 시민사회 현장에서 적용하고 확대, 발전시켜 온 흐름은 꾸준히 확대되어 왔는데, 그 중에서도 최근 7~8년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다양한 시도와 성과들이 축적되어 온 시기이다. 거버넌스 실천전략의 초기에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NGO의 대표나 전문가들이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는 형태로 나타났으며 그것이 거버넌스의 대표적인 실천형태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 시기를 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실행적 영역의 시민사회 참여가 정책적으로 시도되면서 거버넌스의 대표적인 형태로 된 것이 중간지원기관의 설립과 운영이었다. 2011년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은 그 기폭제가 되었다.

마을공동체지원센터와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설립을 필두로 정책의 주요 분야에서 사회혁신을 내세우며 그 실행의 주체로 시민사회의 참여를 촉진하거나 주도하는 중간지원기관의 설립과 운영을 주요한 정책수단으로 삼게 된다. 이 같은 경향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도 많은 영향을 주어 비슷한 성격의 중간지원기관들이 여러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된다. 이러한 경향의 대표적인 중간지원기관으로 마을만들기 혹은 마을공동체지원센터를 들 수 있는데, 20129월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가 설립되기 이전까지는 안산시 좋은마을만들기지원센터,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수원시 마을르네상스센터, 성북구마을만들기지원센터 등 10여개에 불과했던 것이 2017년 말에 가면 전국적으로 81개 마을지원센터가 설립,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밖에도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도시재생센터, NGO지원센터 등 전국적으로 수백 개의 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고, 여기에 자원봉사센터와 평생학습센터, 농촌활력센터, 자활센터 등 그 이전 시기부터 운영되어온 광의의 의미에서의 중간지원기관까지 포함시킨다면 사회복지기관이나 건강지원센터 등 공공서비스 전달체계적 성격이 강한 기관을 제외하더라도 수 천 개의 중간지원기관이 운영되고 수만 명의 관계자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히 중간지원조직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하다.

현 시기 거버넌스 실천전략, 특히 지방정부의 정책 측면에서 거버넌스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점검과 평가는 필수적이며, 문제점과 한계의 극복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거버넌스 정책 논의에서도 이제는 외국의 이론과 사례가 아니라 우리의 풍부한 실천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관점에서 분석해서 평가해보고, 시사점은 무엇인지? 한국적 현실 속에서 거버넌스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지? 정리해 볼 때가 되었다. 밑으로부터의 경험과 평가는 민선 7기 지방 정부의 거버넌스 정책 점검과 수립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2. 한국 거버넌스의 수준과 시민사회의 한계

 

1)한국 거버넌스 정책의 특징

2007년부터 민관협력포럼에서 주관해온 우수사례 공모대회의 선정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한국 거버넌스의 전개에 있어 경향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이에 대한 거버넌스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그 일반적 경향으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민간부문 관계자와 전문가의 형식적 참여에서 실질적 파트너 인정으로 나아가는 실질화의 흐름이 그 하나이고, 의제의 발굴과 정책의 입안과정에서의 참여에서 집행 및 환류 영역으로 확장하는 확장의 흐름이 또 하나이다.

또한 같은 연구에 따르면 초기 일부 전문가의 참여나 NGO의 협력에서 후기로 갈수록 정부, 기업,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모든 영역으로의 확대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으며, 특정 영역의 경계를 뛰어 넘어 다 영역 간의 창조적 협력이나 이미 드러난 문제의 해결과정을 넘어 표면 아래의 문제 발굴과 정책입안까지 나아가는 심화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유의해서 보아야 할 한계적 특성들도 드러나는데 먼저 한국 거버넌스는 민관협력에 있어 관()우위성, 즉 행정의 역할과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는 공적 권위와 재정을 포함한 각 종 공적 자원의 독점과 압도적 우위의 공급능력을 반영하는 것으로 특히 시민사회와의 관계에서 거버넌스의 왜곡을 낳는 주요 원인이다.

다음으로 과정지향적이고 구조화된 사례보다는 목표지향적이고 개별 사업 단위의 협력 사례가 많았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사업이다”, “일거리만 늘었다”. “피로감을 느낀다는 일선 담당 공무원들의 반응이 푸념만은 아닌 이유이다. 때문에 단기적 성과와 실적평가에 시민참여와 민관협력이 활용되고 시민사회의 역량강화나 상호 간의 신뢰자본 형성과 같은 장기적 기반형성으로 잘 연결되지 못하는 한계를 낳고 있다. 이는 선거주기에 맞추어 단기적으로 움직이고 지방정부 리더십의 지향과 의지에 따라 많은 부분이 영향을 받는, 따라서 다소 정파적 편향성의 혐의를 피하기 어려운 한국 거버넌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2)한국 거버넌스의 수준

한국 거버넌스의 실천은 지난 10여년 이상을 열심히 달려왔고 한계는 있지만 적지 않은 확산의 성과가 있다고 자평해볼 수도 있지만 국제적 비교에서 보면 아직 한국의 거버넌스 수준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OECD의 거버넌스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거버넌스 수준은 1점 만점에 0.728점인데 이는 34OECD 국가들 중에서 29위를 차지한다. 한국의 경제력 수준에 비하면 대단히 낮은 순위이다. 특히 거버넌스 지수 중에서 시민사회 능력은 더욱 떨어져서 한국 거버넌스 지수를 낮추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공동체적 지향성을 가지고 사회적 관계망에 참여하는 정도는 대단히 낮다. 또 공익적 활동을 하는 자원결사체는 대단히 저()발전되어 있고, 그 결과 거버넌스의 질은 하락할 수 밖에 없다.

세계 거버넌스 지수(World Governance Indicator, WGI)의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에 국민의견과 책임성을 나타내는 지수는 OECD 국가들 중에서 멕시코와 함께 가장 낮은점수(5.47, 2010)를 받고 있다. WGI국민의견과 책임성지수와 유사한 정부영역을 측정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거버넌스 지수(Sustainable Governance Indicator, SGI)에 포함된 효과적인 민주주의지수(democracy index)이다. 이 지수 역시 비슷한 결과를 내놓고 있다. 측정대상이 된 OECD 31개 국가들 중에서 한국은 멕시코와 함께 5.5점을 획득하여 29위에 랭크되어 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시민영역과 중간결사체영역이 각각 3.54.7로 대단히 낮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거버넌스 수준을 낮추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시민사회능력의 낮은 수준이라는 데에는 언뜻 납득이 잘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한국만큼 NGO의 활동이 왕성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큰 나라도 드물텐데...” 하는 우리 내부의 상식이 그러하고, 이웃 나라인 일본의 NGO관계자들도 한국의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역동성을 부러워한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던 경험하며, 최근의 촛불혁명을 가져 온 시민사회의 힘에 대한 자부심을 보아도 그렇다.

그렇다면 한국NGO의 특성이 어떻기에 외형과는 달리 저평가되는 지, 거버넌스 행위주체의 측면에서 보편적 기준을 갖고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또 일반적인 시민사회 이론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시민사회가 어떤 한계와 부족점을 갖고 있는 지를 잘 따져보는 것은 실사구시적인 거버넌스 정책의 구현과 거버넌스 발전의 측면에서 좀 더 노력하고 역점을 두어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기획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3)한국NGO의 특성

거버넌스의 핵심이 파트너십이라 했을 때 거버넌스를 위한 파트너로서 가장 중요한 당사자는 공공영역의 행위주체인 정부와 시민사회의 행위주체인 NGO라고 할 수 있다. 거버넌스 파트너로서 NGO가 갖고 있는 장점은 다른 민간주체들과는 달리 개인적 이해관계나 집단적 이기주의에 경도되지 않고 공공선에 입각한 합리적 문제해결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먼저 들 수 있다. 또 자발성에 입각한 문제접근과 과제 해결에 대한 열정은 정부조직이 갖지 못한 큰 장점이다. NGO는 시민사회의 다양성에 기반하고 있기에 직면한 문제에 대한 다양한 대안의 접근이 가능하며 미래지향적이다.

또 매너리즘과 현실안주, 수직적 지시 문화와 조직 이기주의 등의 한계에 빠져있는 관료제에 의해 움직이는 정부영역에 비해 NGO가 갖는 장점은, 위의 특성들 외에도 정치인이나 관료들에 비해 높은 신뢰성을 얻을 수 있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갖고 있으며 복잡다기한 갈등사안에 대한 현실적 접근과 중재력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NGO는 여기에 평등한 관계를 중시하고 민주주의적 전통이 강하다는 특성도 있다.

한국 NGO의 형성배경을 알면 한국 거버넌스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서구 근대화 따라잡기(catch-up) 과정에서 한국의 행정체계와 공무원들은 대체적으로 일본을 통해 들어 온 유럽대륙계통의 시스템과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은 반면에 NGO들은 영미계통의 자유주의적 사고와 지향에 보다 익숙해져 있다. 때문에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NGO들은 형식과 절차에 구애받지 않으려 하고 권위주의에는 질색한다.

한국의 NGO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민주화운동의 전통과 그로부터 공급받은 헌신적 인적 자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성공한 민주화운동의 전통은 NGO들에게 도덕적 권위와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해주었고 같은 민주화운동의 뿌리를 공유하는 정부 참여자들 - 정치행정영역으로 진출한 사람들과의 우호적 네트워크(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민주화운동의 관성은 한편으로 권력을 가진 정부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드러내게 함으로써 제대로 된 거버넌스의 실현을 방해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책 사안에 대해 정치적 이분법의 관점으로 접근하게 하는 편향을 낳음으로써 이른바 진영논리에 경도되고 더 나아가 그러한 경향을 심화시키는 첨병역할을 의도치 않게 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또 한국의 주도적 NGO들은 중앙권력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전통에 영향받았기에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과 정책적 비판활동에 익숙하지만 생활기반의 풀뿌리 시민사회에 대한 실질적 관심과 투자는 취약한 편이다. 2000년대 이후 풀뿌리운동과 주민자치에 대한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NGO들이 많이 조직되고 확산되었지만 재정적 측면, 인적자원의 측면, 시민문화의 측면 등 모든 측면에서 아직 자립 기반이 갖추어져 있지 못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낮은 수준에 있다.

 

4)한국 시민사회의 취약성

한국사회의 거버넌스 수준이 낮게 평가되는 데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는 낮은 수준의 시민사회 능력은 위와 같은 한국NGO의 형성배경과 성격에서 연유하는 것 외에도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취약점이 존재하고 있다. 취약점의 근원은 공공영역에 비해 크게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점에 있다. 재정기반의 취약성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 할 수 있고 이와 관련되어 직업적 안정성이 떨어지고 인력 공급과 재생산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민주화운동의 세례를 받고 발전해온 한국의 NGO는 사회의 공익적 가치 실현이라는 대의를 앞세우고 적절한 보상도 없이 헌신적으로 일하는 많은 활동가들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제도화의 진전과 함께 시민활동가들의 제도권 진입이 많아지고 민주화운동의 퇴조 이후 젊은 활동가층의 인입이 줄어들면서 재생산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또 시민사회의 기부문화가 충분히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재정 기반의 취약성은 조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는 불안정한 요소로 작용해왔다.

이런 내부적인 취약성 위에 최근으로 올수록 외부적 도전과 관련된 요인들이 시민사회의 실패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즉 정부가 NGO를 경쟁자로 보아 그 확산을 견제하고 활동 공간의 축소를 의도한 정책을 펴는가 하면 기업들이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에 부정적으로 반응하여 거리를 두거나 투여할 수 있는 자원을 축소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또 시민사회가 제기하거나 개척해온 사회혁신과 관련된 여러 의제들이 정책화되고 제도적으로 수용되면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정부의 하위 역할 수행자로 편재되기도 하고 기업이 직접 설치하거나 그 영향력 하에 있는 사회공헌조직 등을 통해 시민사회의 영역을 잠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3. 중간지원기관 확산과 드러나는 문제들

 

1) 중간지원조직의 역할

시민사회 실패를 줄이기 위해서 나온 제도적 대안 중에 대표적인 것이 중간지원조직이다. 중간지원조직(Intermediary)이란 무엇인가? 한국의 중간지원기관 정책 도입에 참고가 되고 영향을 준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의 내각부는 중간지원조직을 다원적 사회에 있어 공생과 협동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지역사회와 NPO의 변화와 요구를 파악하며, 인재자금정보 등의 제공자로서, 또한 NPO 간의 중계 또는 광의의 의미에서는 각종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을 코디네이션하는 조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중간지원조직의 역할로는 1) 연대와 네트워킹 2) 인적자원관리와 조직발전 지원 3) 재정지원 4) 연구와 정보수집 5) 정부, 기업과의 교량역할 등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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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지원기관은 시민사회실패가 발생할 수 있는 요소들을 보완하고 극복할 수 있는 장점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즉 보다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사회적 이슈를 다룰 수 있고, 아마추어리즘으로부터 다소 벗어날 수 있으며, 자원부족과 섹터적이고 협소한 이기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 중간지원기관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시민사회의 필요에 부응하는 기술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개별 시민단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주민들의 필요에 적극 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우후죽순 격으로 중간지원기관의 설립과 운영지원이 대폭 늘어나고 있다. 특히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거버넌스 정책을 시도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거버넌스 정책의 측면에서 중간지원조직의 성격과 역할을 바라볼 때 중요하게 고려될 측면은 위에서 언급한 시민사회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시민사회의 기반을 튼튼하게 함으로써 파트너 역량을 키우고 거버넌스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2) 한국적 변형 : 남귤북지(南橘北枳)

하지만 현재 지방자치단체들에 의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의 중간지원기관들은 그 기능이 포괄적이고 복합적이다. 특히 공공서비스의 전달체계로서 작동하거나 정부나 지자체 정책의 추진체계로서 작동하는 측면이 강하다. 한국의 중간지원조직의 거의 대다수가 민설민영이 아니라 관설민영이나 관설관영의 형태로 설립, 운영되고 있으며, 고유의 중간지원조직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기 보다는 별도의 사업영역, 즉 지역의 마을만들기, 사회적기업 등과 같은 시민의 참여나 대안적 활동이 필요한 정책영역을 인큐베이팅하고 주도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의 그림은 모범적 사례로 많은 사람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여겼던 완주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임경수센터장이 정리했던 것으로 중간지원기관이 정부 정책 추진체계와 얼마만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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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부분의 중간지원기관들은 운영비와 사업비의 부족, 전문적 센터 활동가의 부족, 행정에서 요구하는 새로운 사업 위주의 운영 등으로 인해 고유의 중간지원기관으로서 역할보다는 사업기관으로서의 역할에 매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 시민들에게는 행정의 대리자로 비쳐지는 경향도 심각하게 검토해 봐야 할 문제이고 중간지원기관 간의 사업의 중복이나 경쟁, 칸막이 현상 등도 과거 행정의 똑같은 문제점을 비판했던 자신을 돌이켜보면 역지사지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3) 중간지원기관 운영의 문제점들 : 의존과 간섭

국토연구원이 201411월 전국의 26개 마을만들기 관련 중간지원조직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조사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조직운영에 있어서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들고 있는 것은 예산과 인력부족이었고, 다음으로 지방자치단체의 간섭과 통제’, 그리고 조직적, 직업적 안정성의 결여로 조사되었다. ‘지방자치단체의 간섭과 통제예산과 인력부족의 문제는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대부분의 중간지원조직이 행정과의 관계가 매우 긴밀한 반면에 간섭과 통제정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사회와의 연계는 대체로 활성화되어 있었지만 시민사회로부터 조직적으로 지원을 받는 곳은 많지 않아 지방자치단체로부터의 독립성, 자율성이 낮았다. 이는 중간지원조직이 지방자치단체에 의존하여 성장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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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의 조직적, 직업적 안정성의 결여도 중간지원조직의 운영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주요한 문제 중에 하나이다. 중간지원기관의 종사자들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보다도 더 열악한 처지에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직영조직에서는 시간제 계약직신분이거나 위탁기관에서는 2,3년 단위로 갱신되는 수탁법인의 부침에 따라 불안정하게 고용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나마 정규인원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1년 미만의 단기적 계약직으로 일하거나 정식 고용관계가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아르바이트식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동일노동에 동일임금보장이라는 보상의 공정성문제는 물론이고 재능기부강요나 열정페이와 같은 노동착취적인 요소도 만연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활동가들의 중간지원조직으로의 쏠림현상과 현장활동가의 부족현상도 날로 심해지고 있다, 정부나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관련 정책들이 많아지면서 해당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현장주민조직이나 당사자조직을 조직하고 지원하기 위한 여러 영역의 일자리들이 늘어났고, 이러한 일자리로 현장활동가들이 이전하거나 관련 활동에 관심 있던 예비활동가들이 중간 영역의 일자리로 흡수됨으로 해서 오히려 현장에는 준비된 활동가가 부족하고 지속적인 재생산도 잘 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4) 행정과 현장으로부터의 이중의 압박

행정에서는 손발처럼 부리려고만 하고, 현장에서는 권위적이고 경직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그야말로 중간에 낀 이들이 되어버렸다행정과 현장, 양쪽으로부터의 압력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중간지원조직의 처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는 말이다.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 느끼는 피로감, 그리고 직면한 많은 문제점의 원인을 희망제작소 소장을 역임했던 이원재는 다음의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그 하나는 활동이 거듭될수록 구체화되고 심화되는 새로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성이 부족하게 된다는 점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장의 흐름을 따라잡기 어렵다. 그 변화에 대응하는 지식을 갖추기란 더욱 어렵다. 특정 의제가 도입되는 초기에는 외국 사례, 외부 자원과의 연결 등 중간지원조직이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행정과 현장으로부터의 새롭게 제기되는 전문성의 요구에 대응하기 어렵다.”

다른 하나는 조직의 관료제화 현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직성이 높아지는 게 관료적 속성을 지닌 조직들의 일반적 특성이다. 중간지원조직은 제도적으로 정책전달자 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조직 설립 초기에는 행정의 정책방향이 구체적으로 서있지 않으므로, 중간지원조직의 운신의 폭이 넓다. 유연성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책 방향은 점점 더 구체화된다. 전달자의 유연성을 발휘할 틈은 줄어든다. 당연히 조직은 경직되고 현장의 불만은 커지게 되어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해서 현재 중간지원조직은 자신의 사명과 역할이 무엇일까? 하고 근본적으로 회의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자칫하면 조직이 행정전달체계에 완전히 편입되어 정책전달자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것으로 굳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간지원조직뿐만 아니라 현장의 피로감도 심화되고 있다. 시민참여를 방법으로 한 여러 영역의 정책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펼쳐지면서 각 영역간의 칸막이 현상과 대상 주민의 중복 현상은 지역현장에 피로감을 쌓이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적극적 활동참여층은 제한되어 있지만 정책적 수요가 증가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또 거버넌스 구조에 참여하는 민간주체들 간의 관계가 공유된 목표의 실현을 위한 협력적 관계라기 보다는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줄서기, 경쟁과 갈등관계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회의를 품게 만들고 있다.

더 나아가 오래된 정책수혜자 집단과 새로운 정책대상 집단 간의 세대적 차이나 사회문화적 배경의 차이가 드러나면서 신구세력 간의 골이 생겨나고, 그것이 정치적 지지의 성향 차이로 까지 이어지면 갈등의 간극이 더욱 고착적으로 변해간다. 이쯤 되면 중간지원기관이 자치와 협력의 지원촉진자가 아니라 오히려 경쟁과 갈등의 매개자로 작동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성찰을 해봐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5) 시민사회기반 강화 전략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로 기본적으로 떠오른 것은 당연히 시민사회의 역량에 기반하여 중간지원조직을 활성화하는 전략이다. 중간지원조직의 시민사회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지역시민사회를 활성화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사회가 튼튼히 자리잡고 그에 기반하여 중간지원기관이 작동된다면 중간지원기관은 보다 건강하게 작동될 것이다. 반대로 중간지원기관의 주요한 역할과 사명 역시 시민사회를 활성화하고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처럼 서로 맞물려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제도적으로 중간지원조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민간위탁이 긍정적 작용을 하려면 수탁받는 조직의 지역시민사회와의 소통 및 민주성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이 보완되어야 한다. 중간지원기관의 자율성과 민주적 운영을 위해 지역시민사회의 통제가 작동될 수 있는 독립적 운영위원회가 설치, 운영되어야 한다. 또는 수평적인 협력방식으로 민과 관이 공동으로 협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공동협력기구를 두고 그 지휘 하에 중간지원기관이 운영될 수 있도록 하여 위탁방식이 갖고 있는 갑을관계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중간지원기관이 정부의 정책사업 추진조직이 아니라 연구조사와 정보의 수발신, 네트워크 지원 등 시민사회의 역량강화와 교량역할을 위한 중간지원의 기능에 충실하게 운영되도록 보장하여야 한다. 현실적으로 특정 정책사업 추진의 중간역할이 불가피하다면, 설립 시 그 지원기관의 사업목적을 분명히 하고 목적완료 기간을 한시적으로 명시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기간 내에 목적을 달성하고 해소할 수 있는 지원기관 일몰제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사업수행형 중간지원조직이 대부분인 현실에 대한 고려 속에서 시민사회 기반구축 지원형 중간지원조직과 사업수행형 중간지원조직의 분리 정립에 대한 아이디어도 있다. 또는 그 응용으로 현실적 여건을 감안한 광역과 기초 중간지원조직 간의 역할분담, 즉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중간지원조직은 직접 주민들과 접촉하고 사업을 발굴하여 그 사업을 주민들과 함께 추진하는 역할에 집중하며, 광역단위의 중간지원조직은 총괄적인 정책기획, 기초단위 중간지원조직의 지원, 연구조사와 교육, 중간지원조직 간 네트워킹 등에 집중하자는 아이디어도 있다.

활동가들의 직업적 전문성과 안정성 강화와 관련한 대책으로는 근본적으로는 공공부문 전반의 개혁을 통해 조직운영의 유연성과 다양성을 제고하고 직무에 맞는 공정한 임금보상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하겠지만, 시민사회영역 자구적으로라도 활동가 재교육 프로그램, 중간지원조직 간의 교류와 협력, 직업적 전망의 개척 등을 위한 대책 등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중간지원조직 활동가와 주민현장활동가 간의 순환근무를 규범화 해나가자는 아이디어도 거론되는 만큼, 중간지원조직의 생계형 활동가가 증가하고, 관료조직의 실무자화해 가는 현상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재정적 인프라 확충과 관련하여 사회적 금융의 조성이 필요하다. 사회투자기금(social investment fund) 및 신용협동조합 활성화, 독립성을 갖춘 지원재단의 설립 등이 그것이다. 정부의 보조금이나 위탁금, 정책예산에 의존해서는 시민사회의 독립성과 안정화를 유지하기 어렵다. 사회적 금융의 조성을 통해 시민사회 재원의 안정화 및 다각화를 꾀해나가야 한다.

시민사회의 힘은 시민들의 의식화와 조직화에서 나온다. 시민교육, 평생학습, 학교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의식을 키우고, 자치와 협동의 가치와 방법을 배우고 익힐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시민교육은 자발적 참여와 자기주도적 학습이 되도록 하고 교육참여자가 함께 학습과정을 만들어가며, 학습동아리 활성화 등을 통해 수평적 공동체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학습은 조직화와 실천으로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

 

5) 제도화의 양면성

운동의 타당성이 증명되고 정책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면 제도화가 진전된다. 제도화는 보편화를 위한 필수적 과정이기도 하고 공적 자원을 동원하여 속도와 폭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넓히는 유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반면에 제도화는 깊게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머뭇거리게 하며 때로는 방향을 잃고 헤매게 만들기도 한다. 운동을 지속시켜 나가는 동력을 계속 확대재생산하지 못하고 기존의 인적 자원들이 제도권 안으로 흡수되면서 운동이 고사될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공공정책을 실행하는 데 있어 법규와 제도를 정비하거나 새로 마련하고 실행과 평가의 실효성 있는 지침을 만드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법규나 예산지침, 이런 문제들은 실제 공무원들을 움직이는데 있어 현실적인 근거가 되고 그것이 잘 정비되어 있지 않으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평가기준을 어떤 내용으로 세우느냐 하는 문제는 거버넌스의 보편화를 위해 공무원들이 갖고 있는 역량이 어떤 방향으로 얼마만큼 쓰일 수 있게 만드느냐 하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마을만들기와 같이 정부의 지원과 결합된 시민참여형의 거버넌스 실행사업을 하다보면 꼭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이 공공을 규제하기 위한 바로 그 지침과 평가기준을 시민들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그 지점에서 부딪히게 된다. 이것 때문에 마을만들기정신과 원칙이 훼손되고,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굴레가 되고 갈등을 불러오는 등 항상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것이 제도화의 양면성을 드러내주는 한 단면의 모습이다.

여기서 기준과 지침이 잘못되어서 그런 거 아닌가? 그것을 골라서 고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고쳐야 할 낡은 관행과 기준도 있고 그것에 근거한 지침은 바꿔야 한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예산의 사용과 검사에 관한 기준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1년 단위 회계연도에 맞춘 보조금사용의 제한이나 행정의 예산계획에 맞춰 집행되기에 민간단체의 융통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국민의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엄격히 해야 하고 잘못 쓰였을 때는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행정의 영역에서 쓰일 때와 민간의 영역에서 쓰일 때 적용 원리와 기준을 그 특성에 맞게 달리 적용하고, 필요하다면 두 개의 각기 다른 원칙과 지침을 세우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서로 다른 영역을 억지로 통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융합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거버넌스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6) 시민사회의 책임성과 다양성

제도화 부분은 이미 현실적으로 많이 진행되어왔고 제도화와 함께 새롭게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과 문제의식이 쌓여가고 있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그런데 이와 다르게 제도 밖의 문제, 즉 시민사회의 성숙에 대한 과제는 시민사회 스스로가 놓치지 말고 깊이 생각해 보고 힘을 기울여야 할 영역이다.

초창기 거버넌스를 시민운동에 도입, 결합시키면서 연관 지어 고민했던 개념이 임파워먼트(empowerment)라는 개념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했을 때 자치권력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접근했었다. 이것은 외형적으로는 제도화와 관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민들에게 권한이 있어야 거버넌스를 하던, 협력을 하던 가능한 것 아닌가라는 것이고 권한의 위임과 분권,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화가 병행되어야 현실적 작동이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임파워먼트의 측면은 시민들 스스로가 자기 힘을 키울 수 있는 능력과 책임성에 관한 문제였다. 시민이 제대로 자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권한과 책임이 같이 가야 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그 동안 급속한 민주화 과정 속에서 권리의 주창중심으로만 해오다 보니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 안에서의 책무를 다듬고 그것을 스스로 해나갈 수 있는 관계를 만들거나 그런 능력을 키우는 데 소홀하였다. 그런 측면에서의 시민사회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 라는 문제를 거버넌스에서는 다뤄야 한다. 현재의 시민사회가 거버넌스의 주체로서 자기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가? 이 질문에 올바로 답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책무성에 대해 반드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최근 지방정부의 거버넌스 정책에서 주목해야 할 변화지점 중에 하나는 시민사회의 행위주체로서 NGO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일반시민 또는 주민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행정이 과거처럼 시민참여를 동원의 관점에서 관성적으로 바라보고 다루기 까다로운 NGO보다는 단기적인 참여성과를 과시하기 쉬운 일반 주민들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일부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시민사회 행위주체의 다양화와 확대라는 측면에서의 대응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와 관련지어 NGO가 갖고 있는 사회적 공신력이 경향적으로 계속 하락해왔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사회의 NGO들이 갖는 강한 가치지향성이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실사구시적인 문제접근을 등한시하는 경향을 낳을 수 있다. 또 진보적 정치지향성을 갖는 한국의 NGO는 몇 차례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민주주의의 제도적 정착으로 사회적인 존재감이 축소되었고 정파적 편향성으로 공격받으면서 공익성을 의심받게 되었다. 또 기존 공공영역의 종사자, 즉 공무원 등으로부터도 또 다른 경쟁자 내지는 권력의 대리자로 인식되면서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공익적 중재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거버넌스 제도화의 진전과 NGO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공격은 사회적 신뢰성의 상대적 저하를 가져왔다. 특히 NGO가 공익성을 어느 만큼 담보할 수 있느냐하는 사회적 신뢰도는 거버넌스의 행위주체로서의 NGO의 사회적 인정과 거버넌스의 효과성을 좌우하는 중요 지표로 항상 스스로 성찰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지점이다.

 

 

4. 발상의 전환을 위한 모색

 

1) 자치분권시대와 행정주도형 혁신의 한계

한국사회는 과거 당연시 여겨졌던 고도성장의 시대를 마감하였고 저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기존 중앙집권적 성장전략은 이미 한계에 봉착하였다. 지방분권과 자치를 통해 형성되는 지역의 자율성과 창의성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27, 그 동안 행정사무의 이양과 분권을 위한 작업이 계속 제기되고 시도되어 왔지만 분권체감도는 아직도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중요한 지역문제는 여전히 중앙정부에 의해 결정되고 있고 세부사무를 지방에 이양하는 행정적 분권만 추진되었지, 결정 및 책임을 강조하는정치적 분권은 너무 미흡하다.

지방분권에 대한 발상을 전환하여 행정권 뿐 아니라 입법권 및 사법권, 재정권을 지방정부에 부여하여 지역의 자기 책임성을 강화하고 동시에 정책개발의 전문성 강화로 새로운 사회발전의 견인차가 되도록 해야 한다. 정보사회와 세계화는 지역의 창의적 발상을 요구하며, 국경을 넘는 지역 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글로벌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정책결정권인 입법권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 비록 2018년 지방선거까지는 자치분권을 핵심내용의 하나로 포함시키는 헌법개정을 하겠다는 지난 대선의 공약이 정치권의 무책임과 무능력에 의해 지켜지지 못했지만 개헌이슈는 아직 살아있는 현재진행형의 국민적 의제이다.

자치분권 추진에 있어서 중앙권력의 권한배분과 위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또 다른 과두제 권력의 변신과 자리보전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동네분권, 주민자치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그것은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권력구조의 개편을 위한 개헌이 반드시 표심을 정확히 반영하고 부당한 권력배분과 독점을 방지할 수 있는 선거구제도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의 정치개혁과 함께 가야만 의미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 나아가 서로 간 이권 빼앗기, 자리차지하기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상대방의 장점을 살려서 함께 일하기, 곧 거버넌스 문화와 시스템이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자치분권이 거버넌스 시스템의 정착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행정의 혁신과 시민사회의 성숙 양쪽에서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마을만들기정책의 발전유형을 시민참가의 적극성 정도와 행정의 혁신정도와 관련하여 구분해 보면 아래 그림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앞서서 마을만들기정책을 구현해온 일본의 경험 등을 참고하여 보면 일반적으로 행정에 의한 마을만들기 단계에서 시민에 의한 마을만들기, 시민을 위한 마을만들기 단계를 거쳐 민관협력의 마을만들기로 발전해가는 경로를 걷는다고 할 수 있다.

 

마을만들기정책의 발전유형

 

 

 

적극적인 시민참가

 

 

시민에 의한 마을만들기

Citizen directedness

participation

 

민관협력(상생) 마을만들기

Collaboration, Partnership

 

 

소극적인 시민참가

 

 

행정에 의한 마을만들기

Maintenance

 

 

 

시민을 위한 마을만들기

Community innovation

 

 

현상유지형 행정

혁신형 행정

현재 한국의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사회혁신을 내건 많은 정책들이 시도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의 발전유형, 즉 시민참가는 아직 낮은 수준에서 혁신정책을 추구하는 행정이 주도해가는 그런 유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유형에서 대표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정책수단이 중간지원조직의 설립과 운영이고, 앞에서 검토한 데로 많은 한계와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행정이 주도하는 지역공동체혁신정책이 계속 쌓이면 유형의 민관협력 거버넌스를 통한 지역사회변화단계로 발전할 수 있을까? 유형이 현재적으로 주어진 불가피한 조건이라면 거버넌스 발전을 위한 최선의 방안은 무엇일까? 무엇을 보완해야 할까?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을 모색할 수 있는 새로운 사고가 있다.

 

 

2) 토론에서 얻은 지혜 : 이익 중시와 유연성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두고 현장활동가와 관련 연구자가 함께 모인 한 거버넌스 관련 연구학습모임에서 다양한 각도에서의 토론이 이루어졌다. 토론 내용 중 현재의 지역사회에서 접근 가능한 공동체주의적 관점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서 옮겨와 보았다. 이 내용은 사회혁신을 추구하는 지방정부 주도적인 거버넌스 정책과 관련되어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과 그에 참여하는 NGO들의 고민 지점과 관련하여 그 해결로 가기 위한 일정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공권력을 담보로 서비스를 전달해야 하므로 규범적이고 바람직함에 대한 공통의 전제를 가지고 획일적으로 가야할 필요가 있고 규범질서도 분명해야 되는데 반해, 시민사회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이해가 표출되고 조정되는 다원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에치오니 등에 의해 대표되는 공동체주의의 관점은 바람직함을 추구하는 수단으로서의 공동체주의가 아니라 해당 지역의 가치를 해당지역 사람들이 같이 만들어내는 그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익이 나에게 배정이 되고 내가 그 이익에 참여지분이 있고 그래서 같이 노력을 했는데 그것이 나도 좋고 남도 좋고 그러면 안 억울하니까 그럴 때 자발적 참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통치의 도구라는 개념으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국가가 할 일이다.

그 지역 사람들의 정서로 그들의 삶이 윤택해지고 내 이익이 생기는 쪽으로 자유주의적인 시장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방향에서 작동되어야지, 마치 국가가 시민사회를 통치하듯이 NGO나 시민운동이 사회를 통치하고 끌고 간다는 관점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가 없다. 규범성에서 탈피해서 자유로운 이익집단 다원주의에 입각해서 전개해야 한다. 내가 큰 기여를 하고 무엇을 개선하겠다는 그 관점이 아니라, 우리 모여 앉아서 얘기하면 좀 더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이지, 우리 모두에게 더 좋아질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하는 관점으로 전환해야 성공할 수 있다.

자유주의 시장질서에서의 공동체주의를 재인식해야 한다. 공공의 당위나 집산(集産)의 개념이 아닌 미국식 공동체주의의 개념으로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익집단의 연계를 통한 참여의 폭발이 가능하다. 옳고 그름의 판단의 잣대를 대려고 하지 말라는 것, 국가통치의 관점을 갖고 지역을 접근하는 것(지역통치)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지역의 가치와 이익을 발굴하는 것, 내가 좋아질 수 있는 것에 착목해야 한다.”

공동체운동의 활동가 등 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구체적 삶의 차원으로 들어가면 충돌되는 지점이 발생한다. 기존 운동의 사고에서는 공익은 사적인 요구를 포기하거나 희생하는 전제 하에서 성립하였는데 이제는 그것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지점이 발생하고 있다.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갖고 있고 그러한 기준을 행정에 요구하니까 행정은 불편하게 생각한다. 지역현장의 주민은 행정이 그들의 이해를 충족시켜주면 만족하고 지지한다. 이른바 관변단체들은 이러한 주민의 사익추구에 민감하고 그것에 충실하며 때로는 그것을 공익으로 포장하는 데 능하다. 그것도 하나의 지역사회 존재양식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들도 지역사회의 일원이고 중요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그들과 어떻게 화합하고 협력할 것인가 하는 관점으로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사회의 일반적 질서이다. 사익이라고 폄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이 시장질서에서 살아가는 방법이고 불법이 아니라면 터부시해서는 안 된다. 단죄하거나 판단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규범을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중간지원조직이 지배하는 사람은 아니다.

정부지원에 의존해 형성되는 한국사회와 달리 전통적인 서구사회에서 사회적경제의 행위주체들은 개인의 이익에서 출발하였지만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같이 나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서구의 사회적경제가 성장해온 오랜 협동조합의 문화가 그러하다. 지역공동체에 기반한 커뮤니티 비즈니스도 기본적으로 그러해야 한다. 정부지원에 의존한 방식도 문제가 있지만 도덕성과 운동적 공익성의 강조로 되어서도 안 된다.”

 

중간지원조직 등 운동 내지 정책의 추진방식에 관해서도 획일적 판단을 넘어선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토론에서는 지적되었다. 자연스러운 발상과 선택, 흐름을 중시해야 하며, 목적의식적 공적활동의 추진이라기 보다는 서로 간의 연계성을 높임으로써 협업의 토대를 만드는 것, 그리고 지역사회 안에서 형성된 소통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연계의 고리가 되는데서 중간조직의 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체계를 갖추어야만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수준은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체계를 갖추고 가든지 갖추지 않고 가든지 이제는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될 수준은 되었다. 임시적으로 만나 일을 추진하던 아니면 조례와 제도를 만들어 추진하던 경우에 따라 케이스에 따라 다양한 방법과 선택이 있을 수 있다. 정형과 비정형, 공식과 비공식, 무엇이 우선하다고 정할 수는 없으며 자연스런 흐름에 맡겨야 한다. 자유로운 발상과 선택, 흐름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한 가지 거기서 중요한 것은 협업이다. 협업의 구조와 문화가 우리 사회에 부족하다. 칸막이란 말도 많이 하는데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협업이란 특정 목적의 공동활동을 추진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서로 간에 연계성을 갖고 있는 것, 저쪽에서 무엇을 원할 때 내가 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공생의 연계는 더 큰 이익 가져올 수 있다.”

연결고리(linking pin)는 권한을 많이 갖는다고 꼭 힘이 센 것은 아니다. 특정모델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특성에 따라 결정될 문제이다. 예를 들어 바우처를 중개하는 조직, 하나만 연결되어 있어도 큰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고, 많은 연결관계를 갖고 있지만 영양가가 없는 경우도 있다. 민간 자발적 조직의 경우에는 연계의 영향력을 쌓아가는 게 핵심이지 기능을 많이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언어적 이상체가 되어야만 공동체가 성공한다는 하버마스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양하게 제각기 얘기하는 것이 기초가 되고 그것을 서로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기반이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협업의 기초이다. 중간지원조직이 해당 지역에서 언어소통의 중심이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부에서 주어진 권위보다도 해당 지역사회에서 형성된 자신들의 정체성을 갖출 수 있느냐하는 것이 관건이다.”

 

 

3) ()와 공()의 중간다리로서의 공()

거버넌스 영역에서 일반주민들의 참여확대는, ‘주민들의 사적 이해관계가 어떻게 공공의 문제로 전환될 수 있을까?’, ‘그 매개체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현실 실천상의 문제로 떠오르게 하였다. 제대로 된 자유주의적 기반과 경험이 부족한 한국현실에서, 공동체의 공익 원칙이 강조될 때 일정한 긴장관계가 발생하고 그것이 또 시민사회의 이중성 - 허위의식과 연결되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위의 질문들은 그러한 사정과 관련이 있다.

비근한 예로 참여하는 시민에게 수당 형식의 인센티브를 주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경우를 들어보자. 현장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돈 받는 시민과 돈 받지 않는 시민”. 마을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주민 출신 활동가, 조력자들을 일부 주민들은 돈 받는 시민이라고 비꼬아 부르기도 한다. 중간 지원 조직이 늘어나면서 적극적 활동층의 주민들 중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분들이 생기고 있다. 이런 역할을 일자리로 규정해야 하나? 자원봉사자로 보아야 하나? 그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인식은 이중적이다.

활동에 참여하는 일반 시민들과 이런 분들 사이의 관계가 협력하고 서로 고맙게 여기는 관계가 아니라 시기하고 경쟁하는 관계로 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간에서 역할하는 이 분들에게 어찌 됐든 - ‘돈 받는이란 형용사를 붙였다 하더라도 -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인정해 주는 것은 그나마 다행 아닌가? 아직도 많은 지역의 경우 그 분들을 단순히 공무원의 대리자, 행정의 연장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인식수준의 차이는 어디서 연유하는 것인가? 행정과 구분되는 민간의 독립적인 영역과 활동조건의 보장, 그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한 것일까?

개인, 즉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중간에 무엇이 있어야 부드럽게 연결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동아시아의 전통적 사고체계 속에서는 두 가지를 이분법으로 갈라 사()는 공동체에 해로운, 숨겨야 할 어떤 것으로 치부하여 왔고, ()은 마땅히 해야 할 도리, 널리 드러내는 것으로 간주해 왔다. 근대화를 받아들인 이후에도 민주주의라는 가치는 마치 과거의 공()을 이해하고 내세웠던 것처럼 그렇게 개인의 이해관계하고는 분리되어 있는 당위나 명분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실제 자신의 생활 상 이해관계의 반영으로서의 공적 영역에의 참여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남 일인 듯 불평불만만 늘어놓거나 행위주체로서가 아니라 민원인으로서 요구나 청탁만 하게 되는 현상을 보게 된다. 공적 영영에 참여하는 행위자들 - 정치인이나 행정가들도 결국 명분 따로 실리 따로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와 공() 사이의 이 넘을 수 없는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고리를 찾을 수 있을까? 마을만들기, 공동체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실천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찾은 해답이 바로 더불어 함께할 공()이었다. 시작은 개인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지만 더불어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그것이 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경험하게 되며, 나아가 더불어 함께 공적 영역을 만들고 책임지는(公共主體) 단계로 발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가 주로 활동하는 무대인 생활세계(生活世界)와 공()이 위세를 떨치는 제도세계(制度世界)의 분열 및 괴리 상황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기 위한 토대로써 공공세계(公共世界)’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공공(公共)하는 철학의 발신자로 한국과 일본 철학계에 일정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김태창 선생의 활사개공(活私開公)의 개념을 접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활사개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래 억압하고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었던 를 살리는 것, 활사(活私)’이다. 활사는 소멸의 대상이었던 사()에서 살림의 대상으로서의 사로 발상을 전환하자는 것이다. 다음으로 활사는 타자의 사를 살리는 것을 의미한다. 타자의 사를 죽이는 것은 결국 자기의 사를 죽이는 것으로 이어지고, 타자의 사를 살리는 것은 그대로 자기의 사를 살리는 데로 연동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과 사 사이의 대화(對話), 공동(共働), 개신(開新)을 통해 궁극적으로 공()의 구조개혁 즉 개공(開公)’을 하자는 것이 바로 공공하는 철학이 추구하는 활사개공의 올바른 의미이다. 이렇게 새로운 차원으로 열리는 공(開公)을 공공하는 철학에서는 공공(公共)’이라고 말한다.

 

 

5. 협치(協治), 그리고 정명(正名)의 길

 

촛불시민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최근의 사회변화는 이번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자치분권과 거버넌스 시대로 나아가는 희망의 꽃이 활짝 피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때, 지난 10여년 간 쌓여 온 거버넌스 실천의 경험들은 소중한 자산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많은 좌충우돌과 실험들은 부딪혀 보지 않았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몸으로 체득한 살아있는 정보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실천들은 정부 리더십의 성향과 의지에 따라 부침이 심했다. 시스템과 문화로서 거버넌스가 정착되었다기 보다는 단체장의 의지와 역량에 의존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정책의 산물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시민들은 아직 정부정책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있으며 시민사회에 이를 안내하고 도와 줄 중간결사체가 충분히 조직되어 있지 못하다. 현재 지방정부들은 주민참여예산제와 같은 다양한 주민참여제도를 매개로 주민 참여형 자치모델을 실험하고 확대해 보려고 시도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합당한 민간파트너가 준비되어 있는가 하는 점은 따져보아야 할 지점이다.

시민사회의 역량강화를 위해서 정부는 과도한 자원배분권한의 독점을 포기하고 장기적 안목을 갖는 사회적 자본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재정지원 체계를 갖춰나가야 하며 가급적이면 독립된 제3의 재단과 지원기구가 운영될 수 있도록 사심 없이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중간지원기관은 자기목적사업에 충실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제도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행정과 시민사회 영역에서 각기 다른 두 개의 원리와 기준이 공존하는 것을 용인해야 한다. ‘대체(代替)’가 아니라 공존(共存)’이다. ‘통합(統合)’이 아니라 융합(融合)’이고 통섭(統攝)’이다. 그것이 거버넌스 정신과 원리에 부합한다.

한국 거버넌스에서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은 시민사회 능력이다. 특히 공동체적 지향성을 가지고 사회적 관계망에 참여하는 시민능력민주시민으로서의 책무성을 높여야 한다. 시민사회가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 대립, 혹은 결탁과 같은 양 극단을 벗어나고 사회적 정의책임에 대한 균형감을 몸에 익혀야 한다. 또 시민사회운영의 경제적 측면에도 주목하여 창의와 도전, 합리성과 같은 비즈니스 마인드를 구현해야 하며 사회적 경제의 결합에 있어서도 특혜에의 의존이 아닌 협동의 힘, 호혜성의 본질이 녹아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끊임없이 개척하여야 한다.

시민사회 임파워먼트 - 자치권력의 강화는 한편으로 분권과 위임에 따른 제도화를 필수조건으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 시민사회 내부의 자치력 향상과 책임성 강화를 충분조건으로 한다. NGO를 넘어선 주민의 등장은 행위주체의 다양화와 확대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시민성은 외부로부터 교양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의 존중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 수평적 시민문화에 대한 훈련에 더욱 많은 자원이 투자되어야 한다.

그동안 취약한 시민사회를 보완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대안으로 중간지원기관들이 많이 설립되고 운영되어왔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중간지원기관들은 포기할 줄 모르는 관()우위성또 하나의 사업으로 상징되는 한계를 보여 왔다. 행정에의 의존과 간섭이라는 굴레 외에도 중간지원기관은 행정과 현장 양쪽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압박이라는 타고난 운명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현장의 시민사회는 경쟁적으로 펼쳐지는 각종 거버넌스 사업에 중복적으로 출연하며 힘겨워하고 시민사회 내부의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행정주도적인 지역사회혁신정책의 열정이 과연 시민사회를 풍성하게 하고 있는지? 거버넌스의 건강한 발전으로 귀결될 수 있는지 성찰해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거버넌스의 이름으로, 중간지원기관을 매개로 추진되어 온 여러 정책들이 빚어낸 문제점들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새로운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

규범적이고 바람직함에 획일적 기준을 갖고 접근하는 위로부터의 방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의 이해가 표출되고 조정되는 다원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시민사회의 특성에 맞는 접근을 해야 한다. 자유주의 시장질서가 작동되는 지역현실에 부합하는 공동체운동을 재정비해야 한다. 마치 국가통치의 관점을 그대로 지역통치로 옮겨놓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 되며, ‘가 좋아질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함께 좋아지는 것이 무엇인지, 곧 지역의 가치와 이익을 발굴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중간지원조직 등 정책의 추진방식에 있어서도 획일적 판단을 넘어선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자연스러운 발상과 선택, 흐름을 중시해야 하며, 목적의식적 공적활동의 추진이라기 보다는 서로 간의 연계성을 높임으로써 협업의 토대를 만드는 것, 그리고 지역사회 안에서 형성된 소통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연계의 고리가 되는데서 중간조직의 힘이 발생한다는 것을 잘 인식해야 한다.

또 사적 이해관계와 공공의 가치 실현을 서로 모순되거나 침해하는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 훈련이 계속되어야 한다. 적절한 매개로서 더불어 함께 해보는() 경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학습과 실천의 변증법을 통해 암묵지를 넓혀가고 집단지성의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자산화가 촉진되고 공유공간의 활용을 통해 공공(公共)의 경험치를 넓혀가고 신뢰에 기반한 사회적자본이 끊임없이 쌓여가는 것을 서로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빈이락(貧而樂)과 부이호례(富而好禮)의 꿈을 현실에서 실현해가는 참된 즐거움이 될 것이다.

 

우리 시대 협치(協治)와 정명(正名)은 시대정신이다. 거버넌스는 단순히 협력하여 통치한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자기 손에 쥔 것을 내려놓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나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어 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당당해야 한다. 자유로워야 한다. 나만 옳다는 아집과 편가름에서 벗어나 실생활에 부합하고 진짜 바른 것이 무엇인가를 더불어 함께 끊임없이 찾아가는 연찬(硏鑽)이 필요하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함께 바라보고 자기 이름에 걸맞게 바로 세우는 것에서 출발한다. 행정은 행정답게, 시민은 시민답게, 또 정치는 정치답게, 경제는 경제답게... 모두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성찰하고 바로 세우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서 손잡고 나아가야 한다.

이 글의 마무리로 꼭 떠올리고 싶은 말이 있다. 헌신과 열정으로 달려온 바로 그 길 위에서 삶을 마감했던 한 중간지원조직활동가의 말이다. 힘겨운 중간지원조직의 현실적 처지를 떠올려 보고 거버넌스의 원리와 지향을 담은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중간지원조직은 행정과 민간의 중간에 끼어 있는 조직이지요. 행정과 민간이 각각 자기 노릇을 하도록 돕는 조직인데요. 실은 없어지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릇이지요. 중간에 끼어있으면 아주 힘듭니다. 없어질 수 있다면 좋겠지요.”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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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수 외(2012). “시민활동 촉진을 위한 시민사회 지원방안 연구.” 한양대학교 산학협력단 특임장관 시민사회팀 용역보고서

장수찬(2013), “시민사회 역량강화와 지방정부의 역할: 중간지원기관 전략을 중심으로”, NGO연구 제8권 제1,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 편(2013), 마을만들기지원센터의 전국적 현황과 전망. 경기 : 국토연구원.

국토연구원(2014), 도시재생 중간지원조직 연구 : 정부-시민사회 관계의 관점에서.

임경수(2014), 비즈니스 플랫폼 기반 발전형 리빙랩 사례, 미발표원고.

日本内閣府 (2002), 中間支援組織現状課題する調査報告, 東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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