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9일 토요일

정의론을 통해 본 평등의 문제(2012.11.)

* 개인의 성숙과 사회의 발전 토론

 

정의론을 통해 본 평등의 문제(개인과 공동체)

 

 

 

박홍순

 

1. 정의가

 

몇 년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책읽기가 붐을 이룬 적이 있다. 그 책은 59만부나 팔렸으며 샌델의 강연회에는 15천명의 청중이 몰렸다고 한다. 책 안 읽는 사회란 불명예를 안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그것도 인문사회과학분야 책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것은 분명 무언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욕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혹자는 작금의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넘어설 새 해법에 대한 갈망이 반영되어 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하버드대의 대화식 강의법이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필자는 그 책 얘기을 들으면서 대학초년시절 목청껏 불렀던 정의와 용기는 젊음의 생명~ ” 하는 가사로 시작했던 정의가를 떠올린 적이 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차츰 노래는 농민가나 노동가, 투쟁가 등 계급주의적 정서가 뚜렷한 노래말로 바뀌어갔지만 사회운동의 초심에 대해 돌이켜 생각하게 될 때면 항상 정의가와 같은 노래가 먼저 머리 속을 맴돌게 된다.

샌델의 책을 계기로 주목을 다시 받게 된 정의공정과 같은 개념은 폭 넓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 가치이다.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민주주의사회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우리는 정의라는 유력한 통로로 접근할 수 있다.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정의론은 롤스의 정의론에서 출발하고 있다.

롤스는 정의의 원칙으로 두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와 같은 기본 자유를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제공한다는 원칙, 둘째 사회적, 경제적 평등과 관련된 원칙으로 소득과 부를 똑같이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다면 그 이익이 사회 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롤스의 정의론은 능력위주의 시장사회를 대체할 대안은 강제로 평등을 달성하는 일은 아니라고 하면서 차등원칙을 제시한다. 차등원칙이란 재능 있는 사람을 격려해 그 재능을 개발하고 이용하게 하되, 그 재능으로 시장에서 거둬들인 대가는 공동체 전체에 돌아가게 하는 것. 가장 빠른 주자에게 족쇄를 채우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달리게 하되 우승의 댓가는 그만의 것이 아니라 재능이 부족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점을 미리 알려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타고난 재능을 공동자산으로 여기고, 그 재능을 활용해 어떤 이익이 생기든 그것을 공유하자는 데 사실상 동의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태어나면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단지 재능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이득을 얻어서는 안되며, 그들을 훈련하고 교육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갚고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그러한 행운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재능 있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서 재능과 소질의 불공정한 분배를 바로잡는다는 것이다.

롤스는 봉건제도나 카스트 제도와 같은 출생에 따라 신분이 정해지는 사회뿐 아니라 능력에 따른 공정한 기회 균등을 인정하는 자유시장제도에서도 출신성분, 사회적이거나 경제적인 이점,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 같은 우연적 요소에 따라 분배 몫이 결정되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오로지 차등원칙만이 소득과 부의 분배를 우연에 좌우되지 않도록 한다. 결국 롤스 정의론의 핵심은 사회의 기본구조를 조정해, 우연한 차이가 행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쓰이도록 하는 것이다

 

 

2. 분배정의와 평등

 

위의 정의론은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균등), 능력에 따른 분배의 정의를 인정하면서도 개인존재의 다양한 차이에서 기인하는 원초적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사회적 의무의 수용을 당연한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근대사회에 있어 평등이란 본질적으로 자유의지를 갖는 개인들 간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를 실현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였다. , 우파 간의 대립과 갈등은 결국 자유의 측면과 평등의 측면 어디에 보다 방점을 둘 것이냐 하는 것을 둘러싼 것이었고, 현실정치에서의 실제적 정책경쟁은 그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개입정도에 대한 차이가 주요한 쟁점이 된 것이다.

현실정치에서 거론되는 의제의 핵심은 국민의 자유와 행복에 관한 것이다. 자유는 주로 권리보장의 형태로, 행복은 경제성장의 결과로 외화되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경제성장은 빈부격차의 심화를 낳고 빈부격차는 공동체의 불안정을 심화시킨다. 빈부격차가 지나치면 민주시민에게 요구되는 연대의식이 약화된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공공영역의 축소와 질 저하를 가져온다, 시민들 공공생활영역에서 부자와 빈자 간의 분리현상이 나타나고 사적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대신 공공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낮아진다. 결국 분배정의의 실현은 공동체의 안정성 유지와도 깊은 연관성을 갖는 것이다.

2천년 전에 쓰여진 동양의 고전 논어에서도 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放於利而行 多怨 ; 논어 이인편 12)”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움직일 수 없는 본성인 것일까? 인간도 생명체 일반이 갖는 자기중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선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자기중심성을 갖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룰 때, 이익끼리 충돌하면 결코 행복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 공자는 이 문제에 있어 아주 실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원망을 받게 되면 결국 자신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다른 사람의 원망 속에서는 진정한 자유나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이익에 따른 행동의 불이익을 지적함으로서 이익을 넘어서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시장기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난 세기 복지국가체제의 한계가 드러난 이후 자유시장에 대한 강조가 유행을 이루었고 세계적 범위에서 시장기능의 확대가 두드러졌다. 그런데 시장원리가 전통적으로 시장과는 거리가 먼 원칙과 기준에 의해 지배받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그 행위를 규정하는 규범의 타락을 불러올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게 되었다. 국방의 의무를 직업군인제도에 의해 대체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인가? 돈을 주고 대리모를 사서 출산하는 문제는 어떤가? 교도소도 민간업자에게 맡기고 돈을 받고 이민자를 받아서 모자라는 3D업종의 노동력을 보충하는 것은 어떤가? 시장은 생산활동을 조직하는 데 유용한 도구이지만 사회제도를 지배하는 규범을 규율하는 원리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실패, 시장실패를 경험하게 되면서 새로운 선택을 위한 창조성을 요구받게 되었다.

 

 

3. 시민의 미덕과 공동선 정치

 

마이크 샌델의 구분에 따르면 정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데에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공리나 행복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 둘째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자유시장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행하는 선택일 수도 있고(자유지상주의),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행할 법한가언적 선택(자유주의적 평등주의)일 수도 있다. 셋째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중에서 샌델의 견해는 세 번째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 권력, 기회를 정당하게 배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좋은 삶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토론하는 과정에서 생기기 마련인 논란을 피할 수는 없다. 정의란 어쩔 수 없이 판단이 끼어든다.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의는 영광과 미덕, 자부심과 인정에 관한 대립하는 여러 개념과 밀접히 연관된다고 샌델은 주장한다.

때문에 샌델은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영적 갈망이 담긴 정치,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공동체의식이 강한 사회이다. 새로운 정치는 시민들이 사회 전체를 걱정하고 공동선에 헌신하는 태도를 키울 방법을 찾도록 해야 한다. 좋은 삶에 관한 지극히 사적인 견해를 주장하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미덕을 키울 길을 찾아야 한다. 학교교육에서 시민교육을 강화하고 국가가 시민의 자원봉사를 적극 권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유한 집이나 가난한 집이나 함께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질 수 있도록 공립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고, 자가용통근자를 끌어들일 대중교통체계를 개선하며, 보건소, 운동장, 공원, 도서관, 박물관, 체력단련장과 같은 커뮤니티 시설(시민공유공간)을 확충함으로써 시민의 공동체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보통 국가의 강압과 배타성을 우려해서 정치와 법은 도덕적, 종교적 논쟁에 휘말리지 말아야 하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샌델은 이러한 소극성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전제하에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 삶(도덕적 이견)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피에서 나온 존중은 가짜이며, 동료 시민의 공적 삶에서 드러나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과 관련된 의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도전, 경쟁, 경청, 학습, 공개적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정의사회 실현에 더욱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사회를 위한 공동선의 정치를 주장하면서 샌델이 소개한 케네디 의원의 1968년 캔자스대학 연설내용은 매우 흥미롭다. 케네디는 이 연설에서 GNP(국민총생산)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GNP에 대기오염, 담배광고, 교통사고처리, 교도소, 산림파괴, 최류탄, 핵탄두와 무기생산 등은 포함되는 반면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 우리 시의 아름다움, 결혼의 장점, 공개토론에 나타나는 장점, 공무원의 청렴성, 우리의 해학이나 용기, 지혜나 배움, 헌신과 열정과 같은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그것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왜 자랑스러운가를 제외하고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라고 요약하고 있다. 오늘날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정치가 지표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명연설이다.

 

 

4. 화이부동의 원리

 

사실 좌우파의 문제는 보다 직접적인 정치적 주장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곧바로 국가권력을 활용한 정책의 선택문제로 연결된다. 하지만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는 사회문화적 문제에 더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평등문제를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와 연관 지어 다룰 때는 정부정책의 측면보다는 시민사회의 역할 측면에서 또는 최소한 정부, 시장과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공동협력의 측면에서 출구를 찾아보는 것이 보다 올바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정의가 상호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게 실현되는 길은 그것이 얼마만큼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 사회성과 같은 인간의 본질적 속성의 발현에 부합하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에 조화롭게 접근하는 길에 대해 일찍부터 동양 고전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화합하되 똑같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 논어 자로편 23)이 그것이다. 아집에 바탕을 두고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소인배가 아닌 군자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공자가 언급한 말이다. 부동(不同)은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특성을 존중하여 상대를 자기중심적으로 나에게 맞추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부동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 다른 사람과 기꺼이 화합할 수 있다. 부동(不同)이 존재론이라면 화()는 관계론이라고 할 수 있다.

소인의 동이불화(同而不和)가 사회적으로 나타나면 악평등(惡平等)을 강요하는 획일적 평등사회가 된다. 불평등은 해소해야 하지만 악평등에 빠지지 않아야 진정한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데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불평등이라면, 다른데 같게 하려는 것이 악평등이다. 이 두 가지에서 각각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평등사회가 구현될 수 있다.

화이부동하는 삶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서(). 서는 자기와 다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한다. 공자가 자신의 도()는 일이관지(一以貫之)하고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은 충()과 서()를 일컬음이었다(논어 이인편 15). 충은 온 마음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진정한 충은 장난감 조립을 좋아하는 아이가 밥먹는 것조차 잊고 그것에 몰입해 있는 상태와 같이 편안함 속에 집중하는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현대사회(자유시장경제)에서 사람의 능력은 경쟁을 통해서 가장 잘 발휘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한한 긴장을 낳는 부작용이 있다. 무한경쟁은 낙오와 불평등을 낳는다. 경쟁을 넘어 경쟁을 대체할 수 있는 가치로 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충은 공정한 경쟁을 목표로 하는 상태를 넘어선 그 이후의 사회를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가게 할 수 있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전라도 장수에서 마을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남곡선생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이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경우에 어떤 사람이 설거지를 하면서 왜 저 사람들은 나처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현재 상태를 즐길 수 없다. 그러나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혼자 설거지하는 상황을 불편해하지 않고, 설거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그 행위를 즐길 수 있다. 서와 충은 이렇게 함께 가는 것이다.”

 

<참고문헌>

마이클 샌델(2010),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앤서니 기든스(1998), “3의 길”, 생각의나무.

이남곡(2012),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 .



<“개인의 성숙과 사회의 발전토론 참고자료>

 

 

개인의 이해와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 현대사회가 당면한 많은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개인의 이해와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하는 문제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 사회제도, 물질, 의식이 서로를 상승시키는 진정한 조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익과 경쟁, 대립과 투쟁을 넘어서는 상생의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아직은 아집이 있는 서로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시스템과 물질적 준비를 통해 의식의 미흡함을 보완해가고 이런 실천의 과정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의식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며, 이러한 의식의 업그레이드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의의 실현을 통해 가능한가?

-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민주주의사회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정의라는 통로로 접근

- 롤스의 정의론은 능력위주의 시장사회를 대체할 대안은 강제로 평등을 달성하는 일은 아니라고 하면서 차등원칙을 제시한다. 차등원칙이란 재능 있는 사람을 격려해 그 재능을 개발하고 이용하게 하되, 그 재능으로 시장에서 거둬들인 대가는 공동체 전체에 돌아가게 하는 것. 가장 빠른 주자에게 족쇄를 채우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달리게 하되 우승의 댓가는 그만의 것이 아니라 재능이 부족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점을 미리 알려준다는 것이다.

- 정의론은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균등), 능력에 따른 분배의 정의를 인정하면서도 개인존재의 다양한 차이에서 기인하는 원초적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사회적 의무의 수용을 당연한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근대사회에 있어 평등이란 본질적으로 자유의지를 갖는 개인들 간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를 실현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였다. , 우파 간의 대립과 갈등은 결국 자유의 측면과 평등의 측면 어디에 보다 방점을 둘 것이냐 하는 것을 둘러싼 것이었고, 현실정치에서의 실제적 정책경쟁은 그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개입정도에 대한 차이가 주요한 쟁점이 된 것이다.

- 지난 세기 복지국가체제의 한계가 드러난 이후 자유시장에 대한 강조가 유행을 이루었고 세계적 범위에서 시장기능의 확대가 두드러졌다.

- 하지만 시장만능주의의 한계는 너무 뚜렷 시장은 생산활동을 조직하는 데 유용한 도구이지만 사회제도를 지배하는 규범을 규율하는 원리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실패, 시장실패를 경험하게 되면서 새로운 선택을 위한 창조성을 요구받게 되었다.

 

정의는 분배를 넘어선 가치의 문제 : 센델의 접근

-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의는 영광과 미덕, 자부심과 인정에 관한 대립하는 여러 개념과 밀접히 연관된다고 샌델은 주장한다. 샌델은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영적 갈망이 담긴 정치,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개인과 공공체 문제의 해법은 인간중심으로 세계를 보는 것

-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는 사회문화적 문제에 더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평등문제를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와 연관 지어 다룰 때는 정부정책의 측면보다는 시민사회의 역할 측면에서 또는 최소한 정부, 시장과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공동협력의 측면에서 출구를 찾아보는 것이 보다 올바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정의가 상호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게 실현되는 길은 그것이 얼마만큼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 사회성과 같은 인간의 본질적 속성의 발현에 부합하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개인과 공동체 문제에 대한 동양고전의 해법 : 이남곡선생

- 2천년 전에 쓰여진 동양의 고전 논어에서도 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放於利而行 多怨 ; 논어 이인편 12)”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움직일 수 없는 본성인 것일까? 인간도 생명체 일반이 갖는 자기중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선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자기중심성을 갖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룰 때, 이익끼리 충돌하면 결코 행복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 공자는 이 문제에 있어 아주 실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원망을 받게 되면 결국 자신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다른 사람의 원망 속에서는 진정한 자유나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이익에 따른 행동의 불이익을 지적함으로서 이익을 넘어서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에 조화롭게 접근하는 길에 대해 일찍부터 동양 고전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화합하되 똑같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 논어 자로편 23)이 그것이다. 아집에 바탕을 두고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소인배가 아닌 군자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공자가 언급한 말이다. 부동(不同)은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특성을 존중하여 상대를 자기중심적으로 나에게 맞추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부동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 다른 사람과 기꺼이 화합할 수 있다. 부동(不同)이 존재론이라면 화()는 관계론이라고 할 수 있다.

- 소인의 동이불화(同而不和)가 사회적으로 나타나면 악평등(惡平等)을 강요하는 획일적 평등사회가 된다. 불평등은 해소해야 하지만 악평등에 빠지지 않아야 진정한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데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불평등이라면, 다른데 같게 하려는 것이 악평등이다. 이 두 가지에서 각각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평등사회가 구현될 수 있다.

- 화이부동하는 삶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서(). 서는 자기와 다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한다. 공자가 자신의 도()는 일이관지(一以貫之)하고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은 충()과 서()를 일컬음이었다(논어 이인편 15). 충은 온 마음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진정한 충은 장난감 조립을 좋아하는 아이가 밥먹는 것조차 잊고 그것에 몰입해 있는 상태와 같이 편안함 속에 집중하는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현대사회(자유시장경제)에서 사람의 능력은 경쟁을 통해서 가장 잘 발휘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한한 긴장을 낳는 부작용이 있다. 무한경쟁은 낙오와 불평등을 낳는다.

- 경쟁을 넘어 경쟁을 대체할 수 있는 가치로 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충은 공정한 경쟁을 목표로 하는 상태를 넘어선 그 이후의 사회를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가게 할 수 있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전라도 장수에서 마을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남곡선생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이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경우에 어떤 사람이 설거지를 하면서 왜 저 사람들은 나처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현재 상태를 즐길 수 없다. 그러나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혼자 설거지하는 상황을 불편해하지 않고, 설거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그 행위를 즐길 수 있다. 서와 충은 이렇게 함께 가는 것이다.”

 

사회정책 신노선으로의 전환 : 발전 주체 문제와 관련하여

. “권한을 시민공동체로, 함께 만들어가는 지역사회

. “협동경제의 활성화, 복지사회는 우리 힘으로

. “성숙한 시민사회발전을 위한 국가의 책임 강화

 

- 국가주도 방식, 사회주의 실패의 경험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배웠다. 공공성의 실현은 위로부터의 강제적 방식에 의해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성찰성이 증대하면서 국가나 시장과 같은 전통적 부문이 아닌 시민사회와 같은 자발적 부문의 사회적 역할과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사람들의 지식문화수준, 기술발전과 생산력의 증대, 민주주의의 발전 등 사회의 전반적인 자율화 과정이 높아지고 있다.

- 시민사회는 국가나 시장이 갖지 못한 새로운 인적, 물적, 정신적 자원을 갖춰나가고 있다. 바로 자발적 부문이라는 특성에서 나오는 힘이다.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자발성에 근거한 공익성의 추구, 이것이 국가실패, 시장실패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열쇠이다.

- 사람들의 지식문화수준, 기술발전과 생산력의 증대, 민주주의의 발전 등 사회의 전반적인 자율성이 높아지고, 근대 산업화·민주화 시기와는 구분되는 사회적 다양성과 개인주의의 심화, 세계화와 정보화 등 새로운 사회발전에 따른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변화하고 있다.

- 보통 시민사회의 두 가지 축은 권익과 책무의 측면에서 형성되는데, 한국도 사회발전에 따라 권익주창(Advocacy)에서 자원봉사(Volunteering)로 점차 기능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 특히 지역사회를 무대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풀뿌리 시민생활영역에서의 마을만들기, 주민자치 등 풀뿌리공동체운동이 대표적인 활동양식으로 떠올랐다. 그것은 지속가능한 생활환경실현운동, 주민참여형 지역복지운동, 자원봉사와 시민교육을 통한 공동체의식 확산운동, 주민자치를 통한 지역공동체 형성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 풀뿌리공동체운동에 있어 주민참여의 궁극적 목적은 참다운 공동체 형성에 있다. 사람들은 풀뿌리지역사회의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참여하여 그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자기존중만이 아니라 타인존중을 배우게 되고 공동체의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체득하게 되며 자기통제의 기술과 자치의 원리들을 배우게 된다.

 

1)시민사회 키우기 ; 큰 사회 담론 - “정부와 시장은 더 작게, 시민사회는 더 크게

- 국가사회발전을 위한 (시민)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 정부주도의 산업화, 기업주도의 세계화수용과정을 거쳐오면서 시민사회가 크게 성장, 인권신장, 민주화를 이끌고 사회의 자유도를 신장시키는데 기여.

- 이제는 시민사회가 국가사회발전의 책임을 공동분담하고 그 유연성과 창의성으로 기여토록 해야, 정부는 시민사회의 역량강화(Community Empowerment)를 위해 적극적 정책을 펼쳐야

-시민사회의 책임과 역량이 강화된다면 정치, 경제, 복지 각 영역에서의 새로운 변화 가능.

정치영역의 역할 : 개방과 참여, 소통, 심의민주주의 확산, 거버넌스(협치)로의 전환

경제영역의 역할 : 대경쟁(글로벌비즈니스)과 상호부조(커뮤니티비즈니스)의 조화, 협동경제영역의 활성화.

복지영역의 역할 : 요구하는 자와 공급하는 자의 관계가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문제해결능력 강화

 

2)심의(토의)민주주의

- 대의민주주의의 결손, 직접민주주의의 위험성, 인류가 발전시켜온 최상의 사회운영제도인 민주주의가 갖는 허점.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질()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그것을 운영하는 주체(主體), 곧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의 성숙정도이다.

- 질 높은 민주주의, 성숙한 시민사회를 위해서는 먼저 상호성(reciprocity)의 원칙이 확립되어야 한다. 타인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욕구를 넘어서서 상호 수용가능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공공성(publicity)의 원칙이다. 정책결정과정이 사익과 특정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어 공공선에 대해 숙의할 수 있도록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고 토론과 대화의 과정이 중시되어야 한다. 셋째는 책무성(accountability)의 원칙이다. 민주주의는 권리의 행사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함께 해야 한다.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과 대표자들은 누구에게나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 이상의 원칙들은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가 실천될 수 있는 조건들로 제시된 원칙들이기도 하다. 심의민주주의는 최근 많은 정치학자들에 의해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연구되고 있고, 그 실험적 적용들이 미국 등 선진국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 공론조사, 배심원재판, 타운홀미팅 등

 

3) 사회적 경제

- 경제민주주의 담론의 유행 : 정의로운 시장경제, 숙의 민주주의에 기초한 공공경제, 지역 공동체에 뿌리박은 사회적 경제가 함께 우리 국민경제 안에 어울릴 때 경제 민주주의 가능

- 사회적 경제는 다음 3측면에서 주목받을 수 있다. ‘위기에 강한 사회적 경제’, ‘불평등을 완화시킬 사회적 경제’, ‘새로운 성장모델로서의 사회적 경제’. 이미 ILO등에서도 이번 경제위기 이후 협동조합이 위기에 강한 이유를 다시 확인해 주고 있는 중임(ILO(2009), "Resilence of the Cooperative Business Model in Times of Crisis)

- 사회적 경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고, 연대와 협동의 원리에 의해 지역과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내발적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음

- 지역발전 패러다임의 전환 : 외생적 개발에서 내발적 발전으로

 

지역의 내발적 발전이란

첫째, 지역개발의 목표가 단순한 경제적 성장이 아닌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 , 경제, 사회, 환경적으로 통합적 발전(integrated development).

둘째, 내발적 발전은 발전의 동력을 기본적으로 지역 내에서 구함(driven from within).

지역내의 자원(자연, 인적, 물적, 문화, 환경자원)의 최대활용에 의한 발전 추진, 발전 성과가 지역 내로 순환(보전), 귀속되도록 함

셋째, 지역주도의 상향식 발전, 주민참여와 협동·자치에 의한 발전을 중시함. 다양한 주체와 파트너십과 네트워크에 의한 거버넌스 중시

4) 통섭과 거버넌스

- 전통적인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적 접근을 통해 과학기술, 생산력의 발전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회의 자유도가 높아진 객관조건을 기반으로 주체들의 관계 고도화를 통해 창조력을 확장하는 새로운 사회발전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 세상은 이미 지식정보화, 세계화, 민주화 등으로 과거로부터 고정되어있던 장벽의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개인들의 자유, 시간, , 건강, 사회적 이동성, 자신감 등이 증가하면서 시민섹터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과거 소유와 지배, 착취와 소비가 지배하던 시대에서 창조와 생산, 봉사와 절제라는 새로운 가치가 보람과 기쁨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고 있다.

- 정부의 간섭, 자본과 교육에의 부족한 접근, 높은 커뮤니케이션 비용 등 이전까지 작동했던 많은 장벽이 제거되면서 시민섹터가 활성화되고 사회와 경제로 나뉘던 개념적인 장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정부와 시장은 시민섹터를 키우고 그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하며 시민섹터는 시장으로부터 배우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경계를 넘어 창조적 협력으로 나아가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좋은 투자이다.

- 근대적 의미의 섹터간 경계를 넘어선 거버넌스의 정립, 그것은 한편으로는 어느 한 섹터가 일방적으로 지배적 위치에 설 수 없는 사회발전의 성숙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배타적 지배구조만으로는 문제해결에 접근할 수 없는 현대사회의 복잡다양한 성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개방, 공유, 소통, 참여 등과 같은 키워드들이 보여주는 웹2.0시대의 특성을 잘 구현할 수 있는 굳 거버넌스가 요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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