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발표자는 현재의 과제로 보수세력 혁신을 제기하고 있다. 그 배경으로 애당초 뉴라이트운동이 제기했던 문제의식이 실제로는 하나도 받아들여진 것 없이 모든 것이 제자리로 환원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보수세력이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정권만 되찾았으니 문제점과 위기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표자가 인용하고 있듯이 참 아리러니하게도 뉴라이트전국연합의 “뉴라이트는 어떤 운동인가”라는 글이 그 현실과제를 잘 설명하고 있다.
“뉴라이트 운동은 우파혁신운동이다. 오늘날 선진화를 가로막는 것은 수구적 좌파만이 아니다. 스스로의 가치에 불철저하고, 상대방의 실패에 기대어 새로운 국가비전을 제시하는데 게으른 낡은 우파 또한 선진화를 저해한다. 뉴라이트 운동은 시민사회 내에서 21세기 대한민국의 우파가 견지해야 할 원칙과 가치를 분명히 제시 확산시킴으로써, 스스로의 가치에 불철저한 우파의 자기 혁신을 추동하는 운동이며,...”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어떤 과제를 잘 제시하느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그것이 현실적 힘과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결국 말과 행동의 일치, 즉 진정성이 관건이라는 점이다.
운동으로서의 자기의 정체성을 발전시켜 나가려면 푯대를 놓지 말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자유주의에 의한 우파혁신이라는 과제’를 일관되게 제기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발표자는 “자유주의가 만개하였던 구미 선진국에서 자유주의의 퇴보현상이 보이지만 자유주의가 제대로 뿌리조차 내린 적 없는 우리로서는 여전히 자유주의에 목마른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감한다.
가까운 현대사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역사와 전통 속에 근대민주주의사회의 기반인 ‘자유로운 개인’이 제대로 성립되고 존중되어 온 적이 없다. 그것은 시장경제활동의 기본질서인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계약과 경쟁에 의한 경제발전의 원리란 측면에서도 그렇고, 물리적 속박뿐 아니라 혈연적 관계나 관습적 권위 등 나 이외의 어떤 외부적 강제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정치적, 사상적 의미에서의 자유로운 개인의 성립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성리학이 지배하던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자연과 인간사회를 관통하는 근본원리로 공(公)의 원리는 존중되었으나 사(私)라는 것은 사욕(私慾)으로써 항상 억제되고 순치되어야 할 그 무엇이었다. 즉 인간 욕구의 자연성에 바탕을 둔 자립적 개체로서의 사(私)의 존재는 부정되었다. 우리의 근대화는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으며, 우리의 헌법과 정치체제, 교육과 문화가 자유민주주의를 수용하였다고는 하나 그것은 다분히 공(公)을 대체하는 또 하나의 명분과 당위로서 이해되었지 ‘자유로운 개인’에 대한 진정한 수용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국가주의나 반공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 전체성을 강조하는 공(公)적 개념에 의해 사(私)는 배제되어 왔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그러한 국가주의, 반공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에 의해 주도되어온 산업화, 민주화의 결과로 한국 사회에도 비로소 사적 자유에 기반한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수 있는 토양이 싹트고 성장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87년 체제하에서 나고 자란 신세대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것을 쉽게 수긍하게 된다. 비단 신세대뿐만 아니라 실제 우리의 모든 정치, 경제, 문화생활의 전반은 이미 사적 욕구의 자유경쟁이 지배적인 작동원리로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이고, 세계화의 개방적 체제에 친화적인 우리사회의 특성상 무한경쟁의 외부요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신좌파들은 자유주의의 주창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하며 연대성과 사회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3.
이른바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인해 우리사회에 서로 모순되는 듯한 다양한 욕구와 주장이 병립하고 충돌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토론자가 보기에 지금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가 보다 충분히 성숙되도록 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초보적(원시적) 자유주의에 머무르지 않고, 성숙한 자유주의로 발전되도록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자유주의의 기초가 되는 개인의 성립은 독립된 개체로서 외부로부터 자신의 존중을 얻어내는 것 뿐 아니라 내가 아닌 상대방도 자유로운 인격을 갖는 개인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바로 이 점이 아직 우리사회에서 많이 부족한 측면이고 상당기간 자유주의가 보다 신장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는 더 나아가 적극적 자유를 의미하는 시민적 미덕에 기초한 공화주의적 가치가, 정의와 공평과 같은 일반적 가치가 교과서가 아니라 현실사회를 움직이는 살아있는 실제 원리로 작동되도록 하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다.
앞으로 우리사회가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적극적 역할과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사회적 의제의 제기와 선도, 갈등의 예방과 중재, 나눔문화와 공동체의식의 확산 등이 그것이다. 본래 사회의 갈등을 줄이고 통합을 도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정치의 고유기능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사회에서는 정치가 오히려 갈등을 유발하고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왔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시민사회의 책임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시민사회가 먼저 나서서 사회통합을 위한 징검다리를 놓고 선순환의 사회발전을 위한 선도기능을 해야할 때다. 우선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상대방의 완전부정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방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발표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2004년 탄핵정국과 역풍, 그리고 2008년도의 광우병 촛불시위의 교훈은 정상적인 선거절차를 통해 국민이 선택한 권력에 대해 그 이외의 방법을 동원하여 부정하고 되돌리려는 시도는 그 어떤 명분을 들이밀더라도 결국 받아들여질 수 없다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룰인 선거과정을 통한 정권의 선택(여야정권교체)과 운영은 움직일 수 없는 원칙으로 정착되었다.
다음으로 좌, 우를 넘어서 합리적인 대화와 신뢰의 네트워크가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과 세력들의 사고와 논의와 실천의 격을 한 단계 높임으로써 견해나 정책의 차이가 일반국민들을 피로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발전을 선도하는 생산적인 선택지를 확대하는 순기능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양 극단이 순화되고 퇴행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집단과 세력이 점차 주변화되어 가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발제자의 의견에 많은 부분 공감하지만 한 가지 더 의견을 보태 말해본다면 어떤 일정한 주의주장의 차이를 기준선으로 하여 전선을 설정하고 좌파와 우파, 혹은 수구보수와 혁신보수로 자꾸 나누어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맞는가하는 것을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진영 중심의 사고, 아(我)와 비아(非我)와의 투쟁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는 시각, 혹시 이것은 우리들 관습 속에 남아있는 낡은 사고의 잔재는 아닌가? 이런 뺄셈적 방식이 아닌 덧셈적 방식은 어디 없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런 연장선에서 기업이 시장의 자유를 원하는 만큼 사회적 책임을 소중히 여기고, 정치가 이념논쟁에 종속되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생활의 정치가 되며, 사람들 사이의 생각이나 문화의 차이가 상호배제의 근거가 아니라 상생의 동력이 되는,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공생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먼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시민 모두의 사명이 되었으면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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